‘논어’의 제9편은 자한(子罕) 편이다. ‘한’(罕)은 드물다는 뜻인데, “공자는 이익과 명(命)과 인(仁)에 대해서는 드물게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공자는 이익과 운명과 어짊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았다. 당대에 이미 최고의 학자로 존경받던 공자는 이익 대신에 의(義)를 말하고, 운명과 인(仁) 같은 큰 문제는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공자는 자신의 학식과 경륜을 펼쳐 보고 싶었지만 써 주는 제후가 없었다.

공자가 지금 산동반도 북쪽의 제(齊)나라로 망명했을 때 제나라 제후인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는 유명한 대답을 했다. 이 구절에 대해서 공자의 11세손이었던 전한(前漢)의 공안국(孔安國)은 “당시 진항(陳恒)이 제나라를 장악하고 있어서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했기에 이렇게 대답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나라 제후 경공을 제치고 진항이 국정을 주도하는 현실이 잘못이므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공자의 답변이 마음에 든 경공은 이계(尼谿)의 전답을 떼 주어 공자를 등용하려 했다. 그러자 제나라의 재상 안영이 유자(儒者)들은 온 재산을 다 기울여 장례를 치르고, 사방에 유세하면서 써 주기를 빌기 때문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반대해서 좌절시켰다. ‘논어’ 자한 편에서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은 공자에게 “여기에 아름다운 옥(玉)이 있을 경우 이것을 궤 속에 감추어 두겠습니까? 좋은 값으로 살 사람을 찾아서 팔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살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라고 답했다. 여기에서 ‘나는 살 사람을 기다린다’는 뜻의 ‘아대가자’(我待賈者)란 사자성어가 나왔다.

공자의 고국인 노(魯)나라 실권자 계씨(季氏)의 가신인 공산불요가 비(費) 땅에서 계씨에게 반란을 일으켜 공자를 불렀다. 뜻밖에도 공자가 가려고 하면서 “대개 주(周)나라의 문왕이나 무왕은 풍(豊)과 호(鎬) 땅에서 일어나 왕이 되었는데 지금 비(費) 땅이 비록 작지만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자 자로(子路)가 가지 못하게 막자 공자는 “무릇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헛되게 부르겠는가? 나를 등용한다면 그 곳을 동주(東周)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자신은 작은 나라를 큰 나라로 만들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내 가지 않았다. 명분을 택한 셈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공자의 나이는 들어 갔다. 공자는 위(衛)나라에서 써 주기를 바랐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자 진(晋)나라의 실권자인 조간자(趙簡子)를 만나러 가려 했다. 위나라에서 지금의 산서성 등지에 있던 진나라로 가려면 황하를 건너야 했는데 강을 건너려는 순간 조간자가 진나라의 어진 대부인 두명독(竇鳴犢)과 순화(舜華)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자는 황하를 앞에 두고 탄식하며 말했다. “아름답구나. 양양(洋洋)한 강물이여! 구(丘:공자)가 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이 명(命)인가!” 공자는 자신이 현실에서 쓰이지 못하는 것이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공자는 현실에서 능력을 써 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대신 역사서 ‘춘추’(春秋)를 써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을 두렵게 했다.

공자가 살던 춘추(春秋) 시대에도 공자처럼 학식 있고 능력 있는 현자보다는 권력을 붙좇는 부나방들이 득세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종 비리로 얼룩진 권력의 부나방들이 고위 공직자로 지명되어 청문회 때마다 논란이 일고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여야의 공수(攻守)만 바뀌었을 뿐 그 양상이나 형태는 전 정권 때와 흡사해 거의 복사판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언제쯤 ‘돌’이 아니라 아름다운 ‘옥’을 제값 주고 사는 훌륭한 장사꾼을 집권자로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옥 값을 치르고 돌을 사는 장사꾼만 택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명(命)인지 가끔 궁금한 생각이 든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