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의 별명은 ‘눕동님’이다. 동사 ‘눕다’와 명사 ‘감독님’의 절묘한 합성어는 상대방의 3피트 파울을 지적하며 2루 베이스에 발끝을 대고 누운 김기태 감독의 기묘한 항의에서 비롯됐다. 보통의 감독은 “내 키보다 더 멀리에 주자가 있었는데 이게 3피트가 안 된다고?”라고 말로 항의했겠지만 우리의 눕동님은 곧바로 드러누웠다. 대부분의 항의가 그렇듯 판정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 장면은 김기태 감독의 스타일을 말해 주는 결정적 한 장면이 되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위기 상황, 마운드에는 (KBO 리그의 많은 투수들이 그렇듯) 제구력이 뛰어나지 않은 젊은 투수가 있다. 그에게 떨어진 사인은 고의사구.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그런데 3루수가 저벅저벅 홈플레이트 쪽으로 걸어가더니 포수를 지나쳐 백네트 앞에 서는 게 아닌가? 고의사구 상황에서 혹시라도 나올지 모르는 폭투를 예방하기 위한 감독의 기발한 작전이었지만, 심판의 제지로 무산되었다. 규정에 의하면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모든 야수는 파울 라인 안에서 인플레이를 기다려야 한다. 야구 규칙이 감독의 아이디어를 따라오지 못한 셈이다. 달리 말해 감독이 규정을 숙지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김기태 감독의 야구는 현대 야구의 특성과 결이 좀 다르다. 점점 통계와 기록의 영역이 커지는 야구에서 그의 야구는 보다 본능적이다. 팬들이 체감하기에 감독의 감에 게임을 맡기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보듯 언변이 뛰어나지 않은 관계로 운영과 작전에 대한 기준과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언론과 팬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김기태, 하면 떠오르는 ‘형님 리더십’은 데이터로 따질 수 없는 감독과 선수 사이 감정의 영역이어서 좋을 때는 좋은 형님이겠지만 안 좋을 때는 바로 그 형님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다른 형님도 있다. 최고령 투수 임창용.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를 응원한 팬들이라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는 선수가 임창용이다. 우승의 영광, 해외 진출, 불미스러운 사고 등 산전수전을 다 겪고 고향 팀에 돌아온 그는 젊은 투수와 경쟁하면서 이를 이겨 내고 경기에 나섰다. 보직 문제로 김기태 감독과 갈등이 있었다는 루머가 있지만 사실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비록 와일드카드 결정전이었지만 가을 야구를 위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제몫을 해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그는 방출되었다. 충격적인 방출 소식과 맞물려 김기태 감독에 대한 여론도 극도로 싸늘해졌다.

일부 팬은 시위로 의사를 표현했는데, 여기에 김기태 감독이 불고기김밥과 물을 제공하려 했다는 소식이다. 여러모로 특별하고 특이한 성격임은 확실한데, 팬들의 불만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애틋한 형님 투수의 급작스러운 은퇴는 도화선이었을 뿐, 다소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보이는 팀 운영, 선수 기용에서 엿보이는 고집 혹은 변덕, 자라지 않는 유망주, 밥 먹듯 당하는 역전패와 끝내기패……. 성적이 하락하면 꼬집을 것이 많아진다. 2017년에는 애칭(愛稱)이었던 ‘눕동님’이 2018년에는 멸칭(蔑稱)인 ‘눕동’이 되고 말았다. 김기태 감독이 가장 잘 알겠지만, 프로는 어쨌든 성적인 것이다.

만족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김기태 감독의 계약 기간은 남아 있고, 계약이 파기되거나 경질될 기미는 없다. 그라운드에 눕고, 3루수를 포수 뒤로 보내고, 시위하는 팬들에게 김밥을 건네는 그의 스타일은 어쩌면 창의적인 작전과 참신한 운영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 시즌은 아니었다. 다음 시즌은 어떨까? 그는 뜻밖의(?) 우승 이후 찾아온 암흑기를 벗어나게 해 준 감독이다. 뒤이어 뜻밖의(!) 우승을 선사한 감독이기도 하다. 그가 진정 어떤 감독인지는 다음 시즌부터 잘 알 수 있을 듯하다. 그가 원하는 코칭 스텝, 그가 원하는 선수, 심지어 그와 가까운 단장…… 멍석은 깔렸다. 그런데, 멍석 아래 어쩐지 가시밭길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찌 됐든 우리의 감독님이 눕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쪼록 뚜벅뚜벅 걸어서 통과하기를, 성적으로 말해 주기를, 그것이 팬들의 바람일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