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모임에서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른 일이 있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잠들지 않는 남도’(안치환 작사, 곡)란 노래다. 그 노래가 머리에 남은 까닭일까. 지난 주말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처음으로 제주시 명림로에 있는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 가기 위한 평화인권기념공원이다. 지난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공포 이후 건립이 추진돼 2008년 3월 개관했다고 한다.

4·3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희생된 주민 수만 2만~3만여 명이나 된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당시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등 국가 권력이 무고한 주민을 희생시킨 사건이란 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지난해부터 제주 도민을 중심으로 제주 4·3사건 특별법 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개정안은 제주 4·3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배·보상하는 내용과 당시 불법 재판 무효화 문제를 담고 있다.

드디어 지난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심사 소위에서 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 개정안이 법안 심사 소위를 통과하면 행안위 전체회의로 넘겨지고 이후 국회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한국당 일각에서는 4·3사건을 여전히 좌익들의 폭동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행안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사위에서 또다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촛불 혁명 이후 우리 현대사의 많은 적폐·부조리가 제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더 이상 이념의 굴레로 국민 안위를 위협하는 반인륜적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4·3 특별법 개정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지경 서울취재본부 부장 j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