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유지와 폐지는 20여 년 동안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사법계 최대 이슈다. 지난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야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同害) 복수법을 적용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사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 국민과 종교계의 생각은 정반대다. 어떤 명분으로도 생명을 빼앗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48년 이래 현재까지 모두 1310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종종 사형 선고가 내려지기도 했으나 1997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집행된 적은 없다. 현재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사형 대기자들은 60여 명이다.

흉악범을 단죄해야 한다는 국민의 분노는 당연하지만 재판장들의 고민은 깊다. 인간의 오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여 억울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판사들은 사형 선고를 고려할 때 인간적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07년 전북 군산지원 오기두 부장판사의 판결문에는 그러한 고민이 배어 있다.

그는 “과연 사형제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면서 잠을 자다가도 가위에 눌려 벌떡벌떡 일어나 잠을 설치는 등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 고백했다. 오 부장판사는 당시 부녀자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사체를 암매장한 흉악범들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지난 2013년 자매 살인범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울산지법 성금석 부장판사는 법구경(法句經)의 ‘증오는 평화로만 풀수 있다’는 가르침을 거론하면서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죄인을 심판해 단죄하는 것을 평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최근 항소심에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사형에서 무기 징역으로 감형돼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씨 측은 항소심에서 ‘사형 선고는 공권력의 복수’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펴며 감형을 요청한 바 있어 국민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그런 그가 무기징역 선고에 불복해 그제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니, ‘공권력의 선의’를 우롱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윤영기 사회부장 pen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