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관습적인 생각과 방법으로만 공간을 재단하지 말고 낯설어도 유연한 삶의 환경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카페-은행’을,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말대로 ‘그것이 무엇인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은행이냐 카페냐를 언어의 개념으로만 규정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초점을 맞추면 칭하는 말보다 그 안의 삶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새로운 생각과 공간이 탄생할 수 있다. ‘무엇’ 대신 ‘어떻게’에. ‘명사’ 대신 ‘동사’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현대 예술과 관련한 책은 이론과 사조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다. 지나치게 많은 지식의 과잉과 관념이 투영돼 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정해진 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길을 찾게 해주는 책이 필요한 이유다.

　건축가의 눈으로 본 공간과 예술에 관한 책이 나왔다.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김종진 교수가 펴낸 ‘미지의 문’은 현대 건축, 현대 예술을 중심으로 ‘창의적 사고’와 ‘실험적 발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와 미국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을 졸업한 저자는 연구와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는 양수겸장의 건축가다.

　‘공간과 예술, 그 너머의 생각’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건축과 예술의 만남이 이루어진 이색적인 에세이다. 지난 2011년 전작 ‘공간 공감’에서 오감과 건축의 관계를 풀어냈던 저자의 시각은 건축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까지 아우르며 외연이 넓어졌다.

　사실 ‘건축’과는 다르게 ‘공간’은 좀더 넓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저자의 시각에 건축 밖의 예술을 논할 때도 ‘공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각의 장은 모두 ‘경계’, ‘사물’, ‘차원’, ‘행위’, ‘현상’, ‘장소’라는 6개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개념들은 현대 예술에서 다루어지는 본질적인 문제들이다. 저자는 ‘미지의 문을’을 여는 열쇠로서 이들 개념을 차용한다. 달리 말하면 이론이나 사실을 담은 ‘건축-예술사’나 ‘건축-예술 이론서’가 아닌 개인적 생각을 담은 예술 에세이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건축가인 만큼 설계안과 건축물 내용이 적지 않지만 철학과 문학, 미술, 음악을 비롯한 다른 장르의 내용도 하나의 예시로 제시된다. 일테면 이렇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독립된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던 19세기 여성의 삶에 안타까워하거나(‘우리를 둘러싼 경계들’), 바흐 곡 ‘카논 토노스’에서 무한성을 추구한 인간의 열망을 보기도 한다(‘무한을 느끼게 하는 공간’).

　또한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자이츠 현대미술관’을 통해서는 단면 이면의 숨겨진 차원, 다시 말해 동일성과 다양성의 세계를 보여준다(‘단면이 드러내는 이면’).

　저자는 무엇보다 건축과 예술은 별개라는 편견과 장르간 경계를 허문다. 사실 현대건축물에는 설치미술 작품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현대미술 작품 가운데에는 건축적 방식으로 창작된 것도 적지 않다. 현대예술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혼종(昏鐘)적 성격이야말로 경계 허물기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책 제목을 ‘미지의 문’으로 선택한 궁극적인 이유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다. 문(門), 즉 작품을 통해 새로운 생각의 차원, 공간의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문 자체가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통과하는 수단으로서의 문일 뿐만 아니라 예술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문인 것이다.”

<효형출판·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