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들이 광해군을 내쫓은 이른바 인조반정 당시 이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다. 인목대비 폐위 등의 문제점은 있었지만 대다수 백성들에게 인조반정은 국가 재건에 힘쓸 시기에 발생한 불필요한 정치적 소요에 불과했다. 반정 일등공신인 이서(李曙)는 반정 직후의 상황에 대해, “갑자기 광해군을 폐출하고 새 임금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나라 사람들은 새 임금이 성덕이 있는 줄 알지 못했으므로 상하가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성패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터에 위세로써 진압할 수도 없어서 말하기 지극히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인조반정에 대한 반발이 컸지만 무력으로 진압하기도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이서는 “오리 이원익이 전 왕조 때의 원로로서 영상에 제수되어 여주로부터 입조(入朝)하자 백성들의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었다”라고 말했다. 선조와 광해군 때 영의정을 역임한 남인 이원익(李元翼:1547~1634)을 영의정으로 영입하자 비로소 민심이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만 일흔일곱의 원로였던 오리 이원익이 영의정이라면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당시 민심이었다. 이원익이 이때 영의정을 수락한 것이 적절한 처신인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반정을 용인하자 정국이 안정될 정도로 무게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대동법의 경세가라 불렸던 전 영의정 잠곡 김육(金堉:1580~1658)은 효종 9년(1658) 9월 5일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상소를 올렸다. 김육은 “신이 만약 갑자기 죽게 되면 하루아침에 돕는 자가 없어져 대동법이 중도에 폐지될 것이 두렵습니다”라면서 호남에도 대동법을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동법이란 소유한 농지 면적만큼 세금을 내자는 세법으로, 농토가 없는 가난한 백성들은 적극 환영했지만 농토가 많은 대지주들은 극력 반대했던 법이었다. 만 일흔여덟 노구의 김육이 죽음을 며칠 앞두고 올린 마지막 유차(遺箚:유서로 쓴 상소) 덕분에 대동법은 확대 실시되었다.

그 후 현종 11년(1670:경술)과 12년(1671:신해)에 경신 대기근이라 불리는 대기근이 발생했다. 한해(旱害:가뭄)·수해(水害:홍수)·냉해(冷害)·풍해(風害:태풍)·충해(蟲害)·혹한(酷寒)에 인간 전염병과 가축 전염병이 더해져 팔재(八災)가 덮쳤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백성들이 속출했지만 상하가 합심해 끝내 극복했는데 그 핵심에 대동법이 있었다.

현종 14년(1673) 11월 전 사간(司諫) 이무가 현종에게, “대소 사민(士民)이 서로 ‘우리가 비록 신해년(현종 12년)의 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동법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대동법에 정치 인생을 건 재상 김육의 경륜 덕에 경신 대기근이 극복된 것이다. 나라의 원로 대접을 받는 재상 한 명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나침반 역할을 한 것이다.

많은 국민들의 기대 속에 출범한 현 정권에 이원익·김육처럼 무게 있는 재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무게 있는 재상은 문제의 큰 틀을 보고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런 재상이 없으니 곁가지만 무성하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불행한 현재의 교육 체제에 대한 근본적 개편은커녕 대입 정시와 수시의 비율이 교육 문제의 전부인 양 소리만 요란했던 교육부 수장의 행태도 이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 논란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을 올려 경제적 약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겠다는 의도야 누가 반대하겠는가? 다만 최저임금을 부담해야 하는 소상공인들 상당수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제적 약자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 부작용이 속출한 것이다. 광복 이후 계속된 친일 지배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 촛불 정신이건만 새 정권 들어 식민사학자들이 제 세상 만난 듯 더욱 기승을 부리는 현실은 또 어떠하며,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 90%를 기각하는 법원의 자기 부정은 또 어떤가?

우리 사회 거의 대부분의 분야가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건만 그를 자를 쾌도(快刀)는 칼끝도 보이지 않는다. 추운 겨울 우리 사회의 그릇된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면서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실망을 넘어 분노로 변해 가고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