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무등산 홍보 대사라고 하면 양현종 선수가 떠오르지만 80~90년대에는 선동열 감독이 그 역할 이상을 맡았었다. 오죽하면 별명도 ‘무등산 폭격기’였을까. 투수 선동열이 불펜에 나와 몸만 풀어도 상대 선수들이 위축되었다는 이야기는 어찌 들으면 과장된 전설 같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걸 올드팬들은 안다. ‘국보급 투수’는 국내 리그를 완전히 제패하고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한다. 일본에서의 별명은 ‘나고야의 수호신’이다. 폭격기에서 국보를 거쳐 수호신까지. 별명만 나열하더라도 그의 선수 생활의 업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운이 좋게도 그의 전성기 플레이를 경기장에서 본 적이 있다. 비가 오면 물방개가 튀어나오고, 1루 출입구에서부터 소주 냄새가 진동했던 무등야구장에서였는데,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의 투구에서는 빛이 났다. 미트에 꽂히는 소리도 달랐던 것 같다. 그 강속구에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그의 활약과 함께 타이거즈는 왕조를 이루었고, 타이거즈의 야구에 지역민은 많은 위로를 받고 자존감을 세웠다. 전국의 야구팬에게는 한 차원 다른 투구로 야구의 매력을 보여 주었다. 그는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명투수 선동열은 화려한 선수 시절을 끝마치고 지도자가 되었다. 스포츠계에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에 가장 두드러진 예가 선 감독이 될 것 같다. 고향 팀을 떠나 삼성 감독으로 우승을 일구면서 감독으로서도 성공 시대를 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은 이의 축복과 기대 속에 돌아온 광주에서 그의 커리어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팀은 우승권은커녕 하위권을 맴돌았고, 신생팀 NC에게도 밀리며 팬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다.

계약 마지막 해 역시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선 감독과 재계약을 택한다. 그러나 무등산 폭격기가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 환영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던 광주의 민심은 그사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선수 관리에서의 허점까지 노출하며 그는 불명예스럽게 퇴진한다. 선동열을 두고 광주의 야구팬은 지금까지도 양가적 감정에 힘들어 한다. 팀의 레전드이자 국보 투수, 첫 번째 영구 결번. 생각지도 못한 암흑기를 가져온 장본인, 더그아웃에서 뭐 씹은 표정만 보여 주던 감독.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의 감독을 맡았다. 전임 감독제로 바뀌고 첫 감독이니 야구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상당한 대우를 받은 셈이다.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기술위원회가 해체되고 코칭 스태프에게 전권이 부여되었으니, 거기서 감독의 권한이 막강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논란의 중심이 된 선수를 기어코 뽑았다. 그 선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책임은 내가 진다’는 감독으로서의 상투적인 발언도 없었다.

같은 대회 축구대표 팀의 김학범 감독은 성남 시절 제자이던 황의조 선수를 뽑으며 그를 뽑아야 할 여러 이유를 제시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본인에게 있음을 누차 강조했다. 반대로 선 감독은 결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확인되지도 않은 ‘기도 시간 경기 중단’ 이야기를 하며 개최국의 문화를 무시했고, 종목과 국가와 관계없이 동일한 조건들을 나열하며 현지 사정의 열악함을 하소연했다. 첫 경기 대만에게 패배했고, 결승에서 만난 일본 실업팀 대표에게는 3점 차로 승리한다. 3점은 마무리 투수의 세이브 기록 요건이 되는 점수 차이다. 달리 말해 접전이었다는 이야기다.(경기 내용은 하품이 나왔지만)

논란이 된 선수는 장염이 겹쳐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도 못했다. 내야는 뒤죽박죽이 되어 포지션이 엉켰다. 좋지 않은 여론에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흔들려 보였다. 감독의 말대로 결과는 중요하다. 그러나 금메달이라는 결과를 제외한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 버렸을 때, 과연 결과는 결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감독이라는 자리는 그저 결과만 내면 되는 자리인가. 그 결과가 이런 결과인가.

전설 속 영웅은 영원히 빛난다. 그러나 현실은 전설이 아니고, 한때 전설이었던 모든 것은 쉬이 사그라진다. 영웅도 순식간에 역적이 되곤 한다. 한때 우리 모두가 사랑했던 한 선수는 지금 실패한 지도자가 되어 비판의 중심에 섰다.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고 싶었으나, 과거는 희미하고 현재는 강렬하다. 과거와 현재의 싸움에서 과거는 늘 패배한다. 무등산 폭격기, 국보급 투수, 수호신 선동열로 추억하고 싶은데, 당분간은 쉽지 않을 듯하다. 아시안게임의 참사 아닌 참사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간 것만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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