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 생각’] 태풍 앞에 선 도시의 나무
2018년 08월 30일(목) 00:00 가가
처음 뿌리내린 자리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나무에게 태풍은 큰 위협이다. 일부 지역에서 피해를 남긴 태풍 솔릭도 나무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예보대로 한반도를 관통했다면, 나무들이 겪어야 했을 피해는 훨씬 컸을 게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태풍 대비책을 마련하지만, 나무는 고스란히 태풍을 맞이해야 한다.
벼락도 나무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벼락에 비해 태풍은 피해 범위가 넓을 뿐 아니라, 대비책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나무 곁에 피뢰침을 설치하면 벼락 피해의 상당 부분을 막을 수 있지만, 바람의 길목에 서 있는 나무를 태풍으로부터 보호할 방법은 없다. 나무를 위해 바람막이를 설치할 수도 없고,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피신시킬 수도 없다. 사람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무를 바람막이로 이용할 수는 있으나, 나무를 위한 바람막이는 없다. 크든 작든 불어오는 바람을 나무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
하릴없이 나무는 제가끔 나름대로 태풍 대비책을 갖춘다.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땅의 힘에 기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소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 같은 나무들이 대개 뿌리를 깊이 내려서 버티는 방법으로 태풍과 맞서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한 낙우송과(落羽松科)의 나무들이 바람에 대비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원뿔형으로 높이 자라는 낙우송과의 나무들은 나뭇가지를 펼치는 폭에 비해 키가 매우 크다. 널리 알려진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는 대략 50년 정도 됐지만, 높이는 20미터를 넘어섰다. 그러나 가지 펼침 폭은 10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바람의 위협에 온전히 노출된 메타세쿼이아는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쓰러질 위험이 크다.
깊은 뿌리로 땅의 힘에 기대는 방식만으로 견디기 어려운 큰바람을 여러 차례 경험한 메타세쿼이아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뿌리를 넓게 펼쳐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는 방식이다. 긴 세월을 거치며 체득한 생존 전략이다. 옆으로 뻗은 뿌리는 곁에 있는 다른 나무의 뿌리와 쉽게 만나서 다른 뿌리들과 얽히고설켜 단단한 덩어리를 이룬다는 장점도 있다. 넓게 뻗은 뿌리로 지탱할 뿐 아니라, 곁에서 엉킨 다른 나무들과 힘을 합해 큰바람을 이겨 낸다. 바람에 맞서는 게 아니라, 높이 솟아오른 줄기를 부러뜨리지 않도록 제 몸으로 바람을 받아들여 흔들리는 게 유리하다는 걸 나무가 아는 것이다.
돌아보면 뿌리를 깊이 내린 소나무나 느티나무에 비해 메타세쿼이아처럼 뿌리를 넓게 뻗은 나무가 태풍을 견디는 데에 더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풍이 덮칠 때마다 쓰러지는 나무들은 대개 뿌리를 깊이 내렸던 소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들이다. 그들보다 훨씬 크게 자라서 바람에 더 힘겹게 저항해야 했던 메타세쿼이아가 쓰러지거나 줄기가 부러진 사례는 훨씬 적다. 나무는 이처럼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온갖 전략을 짜낸다.
그러나 도시의 나무는 그조차 쉽지 않아, 태풍 솔릭으로 크고 작은 가로수들이 숱하게 쓰러졌다. 줄기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혔다. 도시에서는 나무가 스스로 태풍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하에 넓게 뻗은 갖가지 전기 설비와 상하수도 시설을 피해 나무가 뿌리를 깊이 뻗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옹색하게 뿌리 부분만 남겨 놓고, 콘크리트와 보도블록으로 채워 넣은 공간에서 나무는 뿌리를 옆으로도 넓게 뻗지 못한다. 땅의 힘에 기대어 큰바람을 이겨 낸다는 건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태풍을 이겨 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부러지고 쓰러져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는 게 도시의 나무들이다.
사람과 더불어 살도록 키우는 나무라면 그가 더 오래 사람과 더불어 살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지금처럼 옹색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면 아무리 강인한 태풍 대비책을 갖춘 나무라 해도 더 깊고 건강하게 뿌리내리는 게 불가능하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나무의 공간을 최소화하는 도시의 살림살이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태풍이 닥칠 때마다 홀로 안간힘을 다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나무가 만들어 내는 산소를 들이마시며 살아가는 도시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다.
<나무 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벼락도 나무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벼락에 비해 태풍은 피해 범위가 넓을 뿐 아니라, 대비책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나무 곁에 피뢰침을 설치하면 벼락 피해의 상당 부분을 막을 수 있지만, 바람의 길목에 서 있는 나무를 태풍으로부터 보호할 방법은 없다. 나무를 위해 바람막이를 설치할 수도 없고,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피신시킬 수도 없다. 사람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무를 바람막이로 이용할 수는 있으나, 나무를 위한 바람막이는 없다. 크든 작든 불어오는 바람을 나무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
돌아보면 뿌리를 깊이 내린 소나무나 느티나무에 비해 메타세쿼이아처럼 뿌리를 넓게 뻗은 나무가 태풍을 견디는 데에 더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풍이 덮칠 때마다 쓰러지는 나무들은 대개 뿌리를 깊이 내렸던 소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들이다. 그들보다 훨씬 크게 자라서 바람에 더 힘겹게 저항해야 했던 메타세쿼이아가 쓰러지거나 줄기가 부러진 사례는 훨씬 적다. 나무는 이처럼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온갖 전략을 짜낸다.
그러나 도시의 나무는 그조차 쉽지 않아, 태풍 솔릭으로 크고 작은 가로수들이 숱하게 쓰러졌다. 줄기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혔다. 도시에서는 나무가 스스로 태풍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하에 넓게 뻗은 갖가지 전기 설비와 상하수도 시설을 피해 나무가 뿌리를 깊이 뻗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옹색하게 뿌리 부분만 남겨 놓고, 콘크리트와 보도블록으로 채워 넣은 공간에서 나무는 뿌리를 옆으로도 넓게 뻗지 못한다. 땅의 힘에 기대어 큰바람을 이겨 낸다는 건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태풍을 이겨 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부러지고 쓰러져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는 게 도시의 나무들이다.
사람과 더불어 살도록 키우는 나무라면 그가 더 오래 사람과 더불어 살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지금처럼 옹색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면 아무리 강인한 태풍 대비책을 갖춘 나무라 해도 더 깊고 건강하게 뿌리내리는 게 불가능하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나무의 공간을 최소화하는 도시의 살림살이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태풍이 닥칠 때마다 홀로 안간힘을 다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나무가 만들어 내는 산소를 들이마시며 살아가는 도시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다.
<나무 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