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강진에서 10년째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1810년, 부인 홍 씨가 인편에 낡은 치마 5~6폭을 보내왔다. 34년전 혼례 때 입었던 붉은 치마였다. 병든 부인이 치마를 보내온 애틋한 속뜻을 읽었던 것일까. 다산은 색 바랜 치마를 가위로 잘라 10대 두 아들(학연·학유)에게 일깨우는 말을 적은 4점의 서첩(書帖)을 만들었다. 이를 ‘노을처럼 붉은 치마로 만든 첩’이라 해서 하피첩이라 했다. 그리고 3년 뒤 외동딸을 제자 윤창모에게 시집보내며 나머지 치마 천에 ‘매조도’를 그려 선물했다.

다산은 ‘매조도’ 화제(畵題)에 시집가는 딸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았다. “…이제부터 여기에 머물러 지내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아라/ 꽃도 이제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 박석무 지음 ‘다산 정약용 평전’중)

하피첩은 오랫동안 ‘하피첩에 부쳐’라는 다산 시를 통해 이름만 전해질 뿐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2003년에 우연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년 만에 발견된 것인데 그 과정도 극적이었다. 수원 공사장에서 파지를 수집하는 할머니 손수레에 실린 ‘하피첩’ 3점이 한 사업가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올해는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 지 256년, 돌아가신 지 182주년, 유배에서 풀려난 지 200년이 되는 해이다. 선생이 해배(解配)되자 18 제자들이 다신계(茶信契)라는 결사를 만든 지도 올해로 200년이 됐다. 그래서 평생 다산 정약용을 연구해 온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올해를 ‘다산의 해’라고 말한다.

마침 강진군 다산기념관에서는 ‘하피첩’이 공개되고 있는데(‘다산유물 특별전’, 9월 16일까지) 대학자가 아닌 보통 아버지의 모습, ‘인간’ 다산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산은 어린 두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선생 역시, 18년 동안의 긴 유배 생활 속에서 ‘목민심서’ 등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면서도 끊임없이 두 아들에게 당부하는 편지를 쓴 보통의 아버지였다. 백련사 배롱나무꽃도 볼 겸 조만간 다산기념관에 들러야겠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