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출연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곱창’을 소재로 하자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진앙지는 MBC의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였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그룹 멤버가 동네 곱창집에서 혼자서 2~3인분의 곱창구이와 전골을 아주 야무지고 맛깔나게 먹었다. 출연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비명을 질렀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은 일제히 곱창집으로 향했다. 덕분에 그 가수는 ‘곱창 대란’의 주인공이 되었고 순식간에 ‘곱창 여신’으로 등극했다. 공급은 일정한데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니 곱창집 주인들은 ‘손님이 몰려도 팔 곱창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할 정도다.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부쩍 늘고 있다. 그전까지는 맛집 파워 블로그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음식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소비자는 파워 블로그와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가진 전문성과 권위에 주로 의지했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이 일상에서 즐겨 먹는 음식에는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있을 뿐이다. 과연 연예인의 취향과 기호까지 따라 하는 대중의 호기심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우선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 하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은 모유다. 영아의 입장에서 믿을 사람은 엄마밖에 없고 그가 주는 음식은 안전하다고 믿는다. 모유나 분유를 떼고 이유식을 시작하는 유아기로 접어들면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처음 대하는 모든 음식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두려워한다. 이를 ‘푸드 네오포비아’라 한다. 이때 역시 유아가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엄마밖에 없다. 엄마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는다. 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살핀다. 엄마는 최대한 맛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그 표정을 믿고 이유식을 받아들인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새로운 음식에 대한 공포심을 떨쳐 내기 시작한다.

사례 둘.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다 보면 촬영 팀과 한 달 가까이 숙식을 같이 하거나, 1년 넘게 작업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때 출연자인 내 표정을 가장 자세하게 살피는 사람은 촬영 감독이다. 촬영 감독은 나도 모르는 미묘한 표정 변화나 얼굴 근육의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는다. 출연자인 나는 어떤 음식을 먹든 항상 맛있다는 표정을 짓는데 촬영 감독이 보기에는 각기 다른 모양이다. 내가 정말로 맛있다고 느끼는 때와 맛있는 척하는 때를 귀신같이 가려낸다. 전자의 경우 촬영 감독은 ‘진짜 맛있나 봐요’라며 자신도 그 음식은 먹는다.

사례 셋. 일요일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KBS의 간판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아주 높던 몇 년 전. 출연자 몇이 L사의 햄버거를 먹었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시청자들은 일제히 햄버거 배달을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L사는 자체 배달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은 데 반해 경쟁 브랜드인 M사는 배달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결국 그날 저녁 전국에 있는 M사의 매장은 배달 주문으로 북새통을 이뤘다는 것이다.

세 가지 사례는 각각 다른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원리는 사실 동일하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은 그의 저서 ‘맛 이야기’에서 “사실 뇌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의 뇌가 세계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관여하는 것이 ‘따라 하기’다. 뇌에는 따라 하기 전문 뉴런인 미러뉴런이 있다”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신경심리학자 자코모 리촐라티 연구 팀은 원숭이가 손으로 물체를 잡을 때 관장하는 신경세포를 찾던 중 놀라운 발견을 한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지만 다른 원숭이나 사람이 동작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마치 거울에 비추듯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발견하고 이를 ‘미러뉴런’이라고 했다. 그리고 원숭이와 거의 동일한 뇌 구조를 가진 인간에게도 이러한 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결국 인간의 뇌는 애초에 상대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그것을 따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덕분에 인간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상대의 표정을 통해 음식의 맛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연예인이 먹는 모습만 보고도 햄버거를 주문하거나 곱창집 앞으로 향하는 것이다. 일단 따라 하기로 결정한 순간, 무엇을 왜 먹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최낙언은 또 다른 저서 ‘감각, 착각, 환각’에서 “인간이 가진 탁월한 흉내 내기 능력은 학습 능력과 문화의 기반이 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의도와 행동을 예측함으로써 공감하는 능력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즉, 남이 먹는 걸 보고 나도 먹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것은 호들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요구하는 당연한 행동일 뿐이다.

그러니 유명 음식점 앞에서 줄을 서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당신이 정작 경계해야 될 대상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심리를 얄밉도록 치밀하게 이용하는 방송이다. <맛 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