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좌측담장’] 계산 불가
2018년 07월 12일(목) 00:00 가가
프로 야구 감독들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쉽게 하고는 한다. “계산이 되는 선발이 없다.” “계산이 서는 투수를 쓰고 싶다.” “저 타자는 한 시즌 계산이 된다.” 그렇구나, 계산을 하고 싶으시구나. 팬들도 마찬가지이다. 계산이 되는 야구를 보고 싶다. 정확한 계산은커녕 어림짐작도 되지 않은 채 공포와 스릴에 잠식되다가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깨닫는 결말로 치닫는 야구에 이제는 지쳐 버렸다. 올 시즌 타이거즈의 야구가 그렇다. 도대체 계산이 되지 않는다. 도저히 계산을 할 수가 없다. 하는 계산마다 수틀리기 일쑤다. 감독님은 알고 있을까. 팬들의 이런 마음을. 어디에 인터뷰할 데도 없는 이런 답답한 속을.
이 팀에는 견고한 중간 투수, 강력한 마무리 투수가 없다. 없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수년째 그렇다. 어쩌다 나타난 투수는 한두 해 반짝하고 사라진다. 다른 팀에서 영입한 투수는 여기에만 오면 이전의 실력이 반 토막 난다. 에이스는 팀의 허점을 채우려고 불펜 아르바이트를 뛰다 어깨가 상한다. 팬들은 밤 아홉 시만 되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이거 또 역전당하는 거 아냐?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이미 여러 사람 잡혀 있다는 후문이다. 7월 7일 토요일 경기가 그랬다.
그 주말에는 오랜만에 챔피언스필드에 갔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는 무등경기장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고향을 떠나 경기도민이 되어 버린 지금은 광주까지 찾아와 야구를 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다. 활발한 타격전이었다. 7회 극적으로 경기를 뒤집었지만 8회 작년에 트레이드되어 온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하염없이 주자를 내보내더니, 뒤이어 올라온 어깨가 상한 에이스가 상대 4번 타자에게 통한의 홈런을 맞았다. 아, 계산이 선다는 게 이런 뜻인가. 어쩐지 이럴 것만 같았는데, 역시 야구에서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나는 이제 이런 슬픈 예감 같은 거 지긋지긋하다는 말이다. 오랜만인데, 좀 이겨 주지 말이다.
사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야구장에서 내 마음은 계산이나 수식, 예측과 논리 같은 것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도리어 조금은 감상적인 면이 있었다. 10대와 20대의 추억이 어린 옛날 경기장 옆에 들어선 최신식 구장은 편리하기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주위의 교통은 혼잡했고, 주차를 하느라 서로 신경전이 대단했지만 어쨌든 이제 야구를 본다는 설렘에 야구장 주변의 공기는 훈훈했다. 나는 두 딸에게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히고 인파를 헤집으며 자리를 찾아 나섰다.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로 미취학 아동을 데리고도 이동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무엇보다 동선 어디에서든 야구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가 좋았다.
신축 구장 바로 옆에 있는, 이제는 지나간 역사가 되어 버린 그 골동품 같은 건축물에서 타이거즈는 아홉 번 우승을 이뤘다. 김성한, 선동열, 이종범 같은 선수들의 전성기도 그곳에서였다. 굽힌 무릎이 앞사람 등에 닿았던 의자 간격, 페인트가 다 벗겨진 콘크리트 기둥들, 소주 냄새가 자욱하던 1루와 3루 출입구, 팩 소주를 든 채 취해 버린 아저씨들로 채워졌던 관중석…. 이제는 지난 일인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완전히 다르듯이, 그때의 타이거즈와 지금의 타이거즈는 어쩌면 다른 팀일지도 모른다. 호시절의 추억, 지난날의 기억을 역사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계승하고 있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타이거즈는 왕조를 구축할 만큼, 그러니까 계산이 설 만큼 강한 팀이 아니다. 어쩌다 한 번 우승을 했지만 그것은 여러 운수, 예컨대 우주의 기운 같은 게 붙어야 생기는 일인 것이다. 우승 다음 해에 이렇게 가을 야구 자체를 걱정하는 팀이라니, 계산이 안 되는, 그저 그런 팀인 것이다.
8회 초 시작과 동시에 불현듯 역전의 기운을 느낀 나는 경기보다는 경기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 내는 데 집중했다. 많은 관중은 홈 팀의 승리를 바라마지 않았으나, 예전처럼 지고는 못살겠다는 비장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형 전광판은 그날의 사사구와 실책·실점으로 어지러웠지만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까 그 친절한 직원들은 역시나 친절한 어조로 경기장 내에서 캔 음료 사용이 금지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1루 응원석에는 서울에서 여기까지 고생하며 오셨을 원정 팬들이 열심히 북을 두드리고 목청껏 응원가를 불렀다. 어떤 관중은, 타이거즈가 수비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박자에 몸을 흔들기도 했다. 야구장에 왔으면 야구를 즐겨야 한다. 괜한 계산이나 하다가 계산에 맞지 않는 결과에 실망하고 분노해 봤자 본인만 손해라는 말.
두 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8회 수비 도중 일찍 경기장을 나섰다. 챔피언스필드 근처는 어지럽게 주차된 차들로 몸살이었다. 환호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경기장 쪽에서 들렸는데, 그때 윤석민이 김현수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 것이었다. 아, 정말 계산이 서지 않는구나. 차라리 반대로 계산해야 맞는 거구나, 홀로 골똘할 때 아이들이 경기장에서 몇 번 부른 응원가를 흥얼거린다. 다섯 살, 여섯 살 딸들이 어차피 틀리고야 말 계산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아빠를 대신하여 이 경기를 마무리해 주고 있었다. 다음 직관에는 승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알 수 없지. 이 팀은 계산이 되는 팀이 아니게 되어 버렸고, 나는 이제 그 계산 불가의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저 괴상하게 역전패 당하지 말고, 지는 경기는 순순히 졌으면 하는 위악마저 드는 것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차들 사이에서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겨우 도로에 나선다. 차의 후미에 챔피언스필드의 조명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시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축 구장 바로 옆에 있는, 이제는 지나간 역사가 되어 버린 그 골동품 같은 건축물에서 타이거즈는 아홉 번 우승을 이뤘다. 김성한, 선동열, 이종범 같은 선수들의 전성기도 그곳에서였다. 굽힌 무릎이 앞사람 등에 닿았던 의자 간격, 페인트가 다 벗겨진 콘크리트 기둥들, 소주 냄새가 자욱하던 1루와 3루 출입구, 팩 소주를 든 채 취해 버린 아저씨들로 채워졌던 관중석…. 이제는 지난 일인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완전히 다르듯이, 그때의 타이거즈와 지금의 타이거즈는 어쩌면 다른 팀일지도 모른다. 호시절의 추억, 지난날의 기억을 역사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계승하고 있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타이거즈는 왕조를 구축할 만큼, 그러니까 계산이 설 만큼 강한 팀이 아니다. 어쩌다 한 번 우승을 했지만 그것은 여러 운수, 예컨대 우주의 기운 같은 게 붙어야 생기는 일인 것이다. 우승 다음 해에 이렇게 가을 야구 자체를 걱정하는 팀이라니, 계산이 안 되는, 그저 그런 팀인 것이다.
8회 초 시작과 동시에 불현듯 역전의 기운을 느낀 나는 경기보다는 경기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 내는 데 집중했다. 많은 관중은 홈 팀의 승리를 바라마지 않았으나, 예전처럼 지고는 못살겠다는 비장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형 전광판은 그날의 사사구와 실책·실점으로 어지러웠지만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까 그 친절한 직원들은 역시나 친절한 어조로 경기장 내에서 캔 음료 사용이 금지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1루 응원석에는 서울에서 여기까지 고생하며 오셨을 원정 팬들이 열심히 북을 두드리고 목청껏 응원가를 불렀다. 어떤 관중은, 타이거즈가 수비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박자에 몸을 흔들기도 했다. 야구장에 왔으면 야구를 즐겨야 한다. 괜한 계산이나 하다가 계산에 맞지 않는 결과에 실망하고 분노해 봤자 본인만 손해라는 말.
두 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8회 수비 도중 일찍 경기장을 나섰다. 챔피언스필드 근처는 어지럽게 주차된 차들로 몸살이었다. 환호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경기장 쪽에서 들렸는데, 그때 윤석민이 김현수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 것이었다. 아, 정말 계산이 서지 않는구나. 차라리 반대로 계산해야 맞는 거구나, 홀로 골똘할 때 아이들이 경기장에서 몇 번 부른 응원가를 흥얼거린다. 다섯 살, 여섯 살 딸들이 어차피 틀리고야 말 계산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아빠를 대신하여 이 경기를 마무리해 주고 있었다. 다음 직관에는 승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알 수 없지. 이 팀은 계산이 되는 팀이 아니게 되어 버렸고, 나는 이제 그 계산 불가의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저 괴상하게 역전패 당하지 말고, 지는 경기는 순순히 졌으면 하는 위악마저 드는 것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차들 사이에서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겨우 도로에 나선다. 차의 후미에 챔피언스필드의 조명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시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