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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황새 다리를 잘라 뱁새에 붙였으니

2018. 06.22. 00:00:00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은 모든 선거구에서 단 한 명의 단체장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유효 슈팅 제로’의 참담한 패배를 맛본 것이다. 애초 지방 선거 선전을 목표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돼 지난 2월 출범한 바른미래당은 불과 넉 달 만에 다시 간판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과 한국당 사이에 낀 ‘원내 3당’의 한계를 끝내 넘지 못한 채 당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참패는(이번 선거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함께 망하긴 했지만) 거대 양당 체제라는 정치 현실에서 제3세력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준다. 물론 바른미래당의 몰락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갈등의 씨앗이었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합리적 중도’(호남)와 ‘개혁적 보수’(영남)의 결합을 표방하고 출범했지만 정체성의 혼란만 있었을 뿐이다.
국민의당 대 바른정당, 호남 대 비호남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기보다는 당 통합 후 선거를 치르면서 오히려 더 벌어졌다. ‘노원병’ ‘송파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서 안철수계와 유승민계가 공천 갈등을 벌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바른미래당 몰락과 ‘사꾸라’론
언뜻 보면 둘 다 ‘가운데’인 것 같지만, 원래 왼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의당과 오른쪽에 훨씬 기울었던 바른정당의 ‘이종(異種) 교배’ 정치 실험은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선지식인 고우 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황새 다리를 잘라 뱁새에 붙이는 식의 절충’이었으니 애초 성공을 기대하는 게 무리였을지 모른다.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대통령제 정치 현실에서 제3의 정당 출현은 쉽지 않다. 출현한다고 해도 ‘사꾸라’라고 비판되어 결국 여야의 큰 정당에 흡수되는 경향을 보였다.” 유신 시절인 1970년대 중반에 신민당의 소석(素石) 이철승 대표가 ‘중도통합론’을 들고 나왔다가 ‘사꾸라’라는 거센 비난을 받은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1970∼80년대 한국 야당을 이끈 주역이었던 소석은 이후 정치 수명이 다하면서 쓸쓸히 정계를 떠나야 했다.
사꾸라란 ‘여기 와선 이 사람 편인 척, 저기 가선 저 사람 편인 척 애매하게 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본래는 벚꽃을 뜻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변절자·사기꾼의 뜻으로 더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말고기를 ‘사꾸라니꾸’(さくらにく)라고 하는데 말고기의 색깔이 벚꽃과 같은 연분홍색이기 때문이다. 한데 변절자라는 뜻으로 변한 ‘사꾸라’의 어원을 보면, 소고기인 줄 알고 사서 먹어 보니 말고기였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지조론(志操論)으로 유명한 조지훈 선생이 ‘사꾸라’론도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생은 1964년 ‘신동아’ 10월호에 실린 이 글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진단했는데 매우 이색적인 주제였던 만큼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한일 굴욕 회담을 둘러싸고 야당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려 대립이 심했던 그 시절. 특히 국회의원직을 내던지고 반대 투쟁을 전개한 강경파들이 온건파를 ‘사꾸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사꾸라란 말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선생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자. “요즘 유행하는 ‘사꾸라’란 말은 분명히 일본말인데, 그 확실한 어원은 일본 기자들도 잘 모른다는 정도다. 이 ‘사꾸라’의 어원에 대해서 나는 역시 ‘사꾸라’ 곧 ‘앵’(櫻:벚나무)이라고 본다. 첫째, 일어(日語)에 말고기(馬肉)를 ‘사꾸라’라고 하는데, 이는 말고기 빛깔이 쇠고기 같이 암적색이 아니고 홍색 곧 앵화색에 가깝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말고기를 쇠고기인 양 파는 것은 가짜를 진짜라 하는 것이요, 또 양두구육이다.”
“또 이보다도 더 현행하는 ‘사꾸라’의 어의에 가까운 직접적인 어원이 일어에 있다. 그것은 장사꾼이 저의 패거리를 손님들 속에 섞어 놓아 흥정과 속임수에 유리하도록 작용시키는 것을 ‘사꾸라’라고 했던 것이다. 사꾸라 꽃잎처럼 흩어 놓는다는 뜻이었던 듯하다.” 여기에서 사꾸라의 의미는 프락치(끄나풀)에 더 가깝다.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 선생은 이처럼 사꾸라의 어원을 살핀 뒤 당대의 정치 현실에 일침을 가한다. “‘사꾸라’에는 의식적인 ‘사꾸라’도 있고 무의식 중에 저도 모른 사이에 ‘사꾸라’가 되는 수도 있다. 오늘의 ‘사꾸라’의 대다수는 이 무의식적 ‘사꾸라’일 것이다. 그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결과에서는 마찬가지다. 왜 ‘사꾸라’가 되느냐, 부당한 적의 전술을 방조하느냐 말이다.”

다당제 뿌리 못 내리고 시들
바른미래당이 이번 선거에서 몰락한 것은 국민들이 그들을 선명 야당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말하자면 ‘무의식적인 사꾸라’로 보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그토록 표에 인색한 것은 아니었을까. 문제는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바른미래당의 내부 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당장 엊그제 열린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워크숍 결과 당의 정체성에 ‘진보’라는 표현을 명시하자, 옛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좌다.
당초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중도의 결합’에서 ‘합리적 중도’를 ‘합리적 진보’로 수정한 것인데 단지 두 글자 바꾼다고 해서 이미 멀어진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까. 오히려 지방선거를 거치며 양측이 갈등을 거듭해 왔다는 점에서 합당 당시 불거졌던 이념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특히 앞으로 치러질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 정체성과 관련한 이념 노선이 재점화되어 각자도생에 나설 경우 분당 수순으로 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호남계가 떨어져 나와 민주당이나 평화당으로, 나머지 인사들은 한국당에 흡수되는 시나리오다. 이쯤 되면 분당이 아니라 공중분해 수준이다.
이런 비극적인 종말을 면해 보고자 바른미래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비대위원장은 박주선·유승민 공동대표의 사퇴로 대표 권한대행직을 맡은 김동철 원내대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앞길은 여전히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당의 화학적 결합과 정체성 확립을 당면 과제로 내세웠지만, 일대 경성(警醒)하지 않고서야 어찌 ‘운개일출’(雲開日出: 구름이 걷히니 태양이 절로 나오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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