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 등 조선 왕조의 개창자들은 새 왕조가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왕을 포함한 모든 권력이 견제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왕의 권력 견제를 위해서 복역(覆逆)과 간쟁(諫爭)제도를 만들고, 고위 대신들의 권력 견제를 위해서 탄핵 제도를 만들었다.

복역이란 지금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임금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명령 받기를 거부하는 제도이고, 간쟁이란 국왕의 정치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시비하는 제도였다. 또한 백관은 탄핵을 당하면 혐의가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무조건 사임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막강한 간쟁권과 탄핵권을 가진 부서가 대간(臺諫)으로 불린 사헌부와 사간원이다.

그런데 이처럼 막강한 사헌부와 사간원의 직제는 그리 높지 않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은 종2품,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은 정3품이었다. 종2품은 지금으로 치면 차관급이고, 정3품은 차관보급 정도이다. 이 정도 직급의 대간들이 1품만 다섯 명이 포진한 의정부 대신들을 거침없이 탄핵했다. 사헌부는 여기에 수사권까지 갖고 있었으니 위세가 더 막강했다.

그러나 두 기관의 공통 특징은 가난하다는 점이었다. ‘연려실기술’의 ‘관직전고’(官職典故)는 사헌부에 대해 ‘심히 맑아서 물력(物力)이 없다’고 하고 있고, 사간원에 대해서는‘제일 청한(淸寒)하다’고 적고 있다. 사간원 표피(司諫院豹皮)라는 말이 있었다. 사간원은 워낙 가난했기에 관원들 회식비도 없었다. 그래서 사간원에 있던 표피(豹皮:표범가죽) 한 장을 여러 아문에 돌려가면서 돈을 꾸어 썼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명예를 먹고 사는 기관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간에게 절대 권력을 주지는 않았다. 먼저 수사권을 여러 기관에 나누어 놓았다. 사헌부가 대표적인 수사기관이었지만 의금부와 형조도 수사권이 있었고, 지금의 경찰에 해당하는 포도청도 수사권이 있었다. 문종 즉위년(1450) 4월 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 등이 사헌부에서 사간원의 관리를 수사한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고하자 사간원 관리를 의금부에 내려서 수사하게 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대간들은 또한 피혐(避嫌)과 상피(相避)를 엄격하게 적용했다. 본인에게 털끝만 한 하자라도 있을 경우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피혐이고, 유관 부서에 이해관계자가 같이 근무할 수 없게 한 것이 상피이다. 성종 10년(1479) 대사헌 어세겸(魚世謙)은 동생 어세공(魚世恭)이 병조판서가 되자 즉각 면직을 요청했다. 사헌부는 병조의 분경(奔競:엽관운동)을 살피고 정사(政事:인사권)의 잘못을 탄핵하는 기관이므로 동생이 병조판서가 되었으니 대사헌을 사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상호 견제를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아 권력 기관을 운용했기에 조선은 권력형 부정부패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권 력기관의 의도된 ‘모른 체’로 묻혀지는 일도 없었다. 이는 조선의 권력 기관 운용 시스템과 명예를 중시하는 선비들의 처신이 만든 업적이었다.

검경 수사권 논쟁이 다시 재연되었다. 새 정권 들어 국민들이 뽑은 1순위 개혁 과제가 검찰 개혁이고, 그 다음이 정치 개혁, 언론 개혁, 노동 개혁 순이었다. 조선의 사헌부는 차관급 1명의 부서로서 임금에게 간쟁하고 고위직을 상대로 사정 활동을 벌여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샀다. 여기에 비해 차관급만 무려 42명 이상에 수사권과 기소독점권을 독차지하고 있는 검찰이 개혁 과제 1순위에 올랐다는 것은 검찰의 반성을 요구하기 전에 그 차제가 이 나라 권력 기관 운용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국민들이 경찰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 수사권을 주자는 것은 아니다. 일단 검찰의 전횡을 방지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간단한 명제를 무시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 독점권은 1912년 일제가 만든 조선 형사령에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쉽게 때려잡고 쉽게 감옥에 처넣기 위해 만든 제도가 광복 73년이 넘도록 유지된다는 자체가 선조들에게 크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