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야 야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겠지만, 세계적으로 야구를 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와 카리브해의 몇몇 국가, 동아시아의 한국·일본·대만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넓게 봐 주면 호주와 네덜란드 정도가 포함될 수 있을 거다. 거의 유일한 국가 대항전 야구 대회인 WBC에 참여할 수 있는 나라도, 모으고 모아 봐야 16개국이 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비해 지금 6월 15일 개막하는 FIFA 월드컵은 어떠한가. 32개 참가국은 각 대륙에서 치열한 예선을 거쳐 당당히 러시아 땅을 밟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가 FIFA 가맹국이다. 축구는 인종과 대륙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 하나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그만큼 보편적이다. 야구는 경기장도, 도구도, 룰도 조금은 복잡하다. 축구와 야구는 그 즐거움의 깊이는 비슷하겠으나, 여러모로 대척점에 서 있는 스포츠라 할 수 있겠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야구를 하는 나라는 적고, 축구를 하는 나라는 많다. 이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종합 스포츠대회에서의 정식 종목 채택 여부를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 된다. 그리하여 올림픽에서 야구는 한때 퇴출되었다가 도쿄 올림픽에 한해 임시로 정식 종목 지위를 회복하였다. 아시안게임에서는 퇴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근근이 유지는 되고 있는바, 참가국은 8개에 불과하다. 여덟 참가국이 메달 색을 겨루는, 약간은 민망한 대회의 국가 대표 엔트리가 발표되었다. 아시안게임이든 올림픽이든 우승하면 좋고, 애국심에 의거한 응원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의 야구가 이토록 관심을 받는 이유는 스포츠의 매력이나 국가주의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화두. 병역 혜택이 관심의 원인이다.

올림픽은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을 따야 병역을 합법적으로 짧게 해결할 수 있다. 이는 스포츠 선수에게 엄청난 기회이자 혜택임은 분명하다. 여러 종목에 일괄적으로 이 조건은 적용되는데, 축구는 물론이고 수영, 육상, 배드민턴, 탁구, 레슬링, 근대3종… 모든 종목을 통틀어서 야구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기 가장 용이하다. 참가하는 8개 나라 중에 프로 수준의 야구를 하는 나라는 3개국에 불과한데 대만에는 꽤 긴 시간 우리가 우위를 보여 왔고, 일본은 프로 선수가 아닌 사회인 선수가 출전한다. 2006년 도하와 같은 이변이 아니라면, 금메달을 딸 확률이 높은 것이다. 달리 말해, 병역 의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1998년 방콕에서, 2002년 부산에서, 2010년, 2014년…… 메이저리거를 포함해 많은 야구 스타가 아시안게임을 통해 커리어를 더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올해 열릴 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 대표 선수들의 애국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만, 병역 혜택의 달콤함을 부인할 다른 알리바이도 딱히 없다. 그들을 탓할 이유도 없다. 나 또한 합법적인 방법이 있었다면 훈련소 가는 길을 피했을 것이다. KBO는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동안,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리그를 중단한다. 올스타 휴식기도 3일에 불과한 야구에서, 3주에 가까운 리그 휴식은 기형에 가깝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야구의 매력 중 하나는 매일매일 경기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오늘의 승부 뒤에는 내일의 선발 투수가 예고되고, 오늘 부진한 타자가 내일 컨디션을 회복할 수도 있다. 주6일 게임을 위해 선발 투수는 다섯 명 이상으로 구성되고, 불펜 투수의 등판 일정은 세심하게 조율된다. 던지고 치고 달리는 것만이 야구가 아니다. 게임과 게임이 이어지고 그 이어짐을 통해 기록이 쌓이는 것. 야구팬이라면 모두가 아는 야구의 참맛일 것이다.

도대체 아시안게임이 뭐라고 리그를 중단하는가. 같은 기간 K리그는 정해진 일정을 모두 소화할 예정이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축구팀은 홈의 이점을 안고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이전 대회에서는 오랜 기간 병역 혜택…… 아니, 우승에 실패했다. 앞서 말했듯이 축구를 하는 나라는 아주 많고, 경쟁국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적을 올리긴 어려우니까. 리그를 중단하면서까지 아시안게임에 몸값 높은 선수들을 차출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예 멤버로 참가하면 금메달을 딸 확률이 높아진다. 젊은 유망주가 병역 혜택을 받아 리그를 이끌 스타가 될 수 있다. 그 선수는 물론 그가 속한 팀에게도 좋은 일이다. 정예 선수를 차출한 상태로 진행되는 리그는 형평성 논란에 시달릴 것이다. 기록 관리도 안 될 것이다. 결국 리그를 중단하는 것만이 누이와 매부 모두가 좋은 일인 것이다. 이른바, 좋은 게 좋은 것. 리그를 중단하는 이유가 좋은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라니.

좋은 게 좋아서 어떤 선수는 끝까지 버티며 아시안게임 승선을 노린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미필 선수를 팀별로 적절히 안배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금메달을 담보할 수 있는 베테랑을 선발한다. 그들이 국가를 대표할 때 야구는 쉰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누가 무엇이 어떻게 왜 좋은지, 곰곰이 생각할수록 미궁이지만, 아마도 그 대답에 애국심의 자리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