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100년 인물열전] <18> 강진=‘하멜 표류기’의 저자 하멜
2018년 06월 13일(수) 00:00
조선을 알린 하멜, 강진의 새 브랜드로 키운다

‘하멜표류기’는 서양인의 눈으로 본 최초 조선의 문화보고서로, 저자 하멜은 세계 속에 조선을 알린 인물이다. 병영성 인근에 자리한 하멜기념관에 있는 하멜 동상. <강진군 제공>









강진 병영에는 ‘하멜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앞에는 중절모를 쓴 건장한 서양인의 동상이 서 있다. 한손은 책을 들고 다른 한손은 가까운 방향을 지시하는데 여느 동상과는 다른 아우라를 발산한다. 한적한 시골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이곳을 처음 찾은 이들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낯선 시공간으로 유배 온 듯한 착각을 준다.

이곳은 하멜을 기리는 공간이다. “기린다”는 표현이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싶겠다. 그러나 커다란 동상을 설치하고 기념관을 마련한 것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역사책에서 배웠던 하멜(1630~1692)과 그 일행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는 때로 현실보다 더한 실존의 세계를 명징하게 보여줄 때가 있는데 하멜이 그 경우다.

강진군은 지난 2007년, 400여 년 전 태풍으로 떠밀려왔던 서양인을 위해 전라병영성 내에 하멜기념관을 건립했다. 전라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축조된 것으로 1895년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남과 제주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타원형의 전시관은 하멜이 상륙했던 섬을 상징한다. 맞은편 사각형 건물은 당시 풍랑으로 망망대해에 표류했던 스페르베르호(Sperwer)를 본떴다. 우주에서 날아와 정착한 듯한 스페르베르호는 주위의 풍경과는 사뭇 이질적인 조화를 이룬다.

하멜은 조선에 들어와 노예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 속에 조선을 알린 인물이다. 그가 쓴 ‘하멜표류기’는 서양인의 눈으로 본 최초 조선의 문화 보고서다. 하멜의 노고로 조선은 서양사에 정식으로 데뷔를 하게 되는데 요즘으로 치면 ‘무임승차’를 한 케이스다.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조선이 타의에 의해 바깥 세상에 알리게 되는 기회를 맞게 된 거였다.

그러나 하멜이 보고서를 쓴 원래 목적은 체류 기간의 임금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온다. 언급했다시피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원이었다. 당연히 힘겹고 어려웠던 점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을 게다. 조선을 세계무대에 알리기 위해서든,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서든, 그의 보고서는 오늘의 관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세계인의 시각으로 우리를 보고, 우리의 관점으로 세계를 주시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 폭풍우 만나 낯선 땅에 정착한 하멜 일행

그렇다면 하멜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됐을까. 잠시 400여 년 전 시간 속으로 돌아가 보자. 때는 1653년(효종4) 8월 16일, 제주 연안에 세찬 빗줄기가 내리치고 있었다. 수 일째 내리던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섬 연안을 지나던 국적 불명의 선박이 풍랑에 휩싸여 있었다.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배는 난파 직전 기적적으로 섬에 닿았다. 선박 안에 있던 이들이 조심조심 갑판 위로 올라왔다. 선박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무역선이었다. 물품을 싣고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운좋게 제주도에 정박한 거였다.

키가 크고 코가 큰 낯선 서양인들이 제주도에 내렸다. 하멜 일행이었다. 그들은 장시간 운항과 풍랑과의 사투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 작은 조선의 수군들에게 붙잡혔다.

낯선 이역만리 조선 땅으로 들어오게 된 하멜 일행은 비참했다. 의식주, 언어, 문화 그 어떤 것도 수월치 않았다. 더러 그들은 동물원의 원숭이 취급을 당해야 했다. 양반가에 불려가, 구경거리가 되는 것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파란눈의 이방인들은 절망과 외로움 속에서 탈출의 기회만을 엿보았다.

그러나 도주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그동안 하멜 일행은 한양으로 이송되었고 먼 강진으로까지 유배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장장 7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는 강제 노역이라는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강진에서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전라병영성 축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년 후 하멜 일행은 다시 여수, 순천 등지에 분산되었고 마침내 탈출로 이어졌다.

◇ 강진의 새 브랜드가 될 하멜촌

400여년이 흐른 후, 하멜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글로컬 시대에 발맞춰 기존의 하멜기념관이 ‘하멜촌’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강진군은 지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하멜촌’을 조성하고 있다. 2016년까지 설계와 용지 보상을 마쳤고 2019년 4월에 준공 및 임시 개관할 예정이다. 내년 4월 전라병영성축제에 맞춰 개관한다는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하멜기념관은 약 4배 정도 증축된다. 이곳은 전라병영성, 하멜, 병영마을이라는 3가지 테마관으로 꾸며지며 어린이 체험장, 4D영상관, 카페, 뮤지엄샵 등이 새롭게 들어선다.

단순히 유품이나 자료를 전시하는 기념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머무르고, 느끼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에는 하멜기념관, 민속마을, 생태공원, 생태공원 등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선다. 또한 튤립 정원, 옛 주거양식을 재현한 펜션 등 휴양형 테마파크가 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산 풍차가 잠자리 날개를 퍼덕거리며 이국의 정서를 선물할 날이 멀지 않다.

조선에서 13년 거주하다 본국으로 돌아가 이곳의 생활을 보고서로 남겼던 하멜. 그가 있었기에 조선은 유럽에 알려졌고, 오늘 세계의 중심을 향해 도약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조선의 지배층은 국제 정세에 무지했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절호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들은 두 번의 큰 전란을 겪었음에도 매일 당쟁으로 날을 세웠다. 백성의 삶은 피폐했으며 민심은 갈가리 찢겼다. 오늘 우리가 다시 400년 전 푸른 눈의 서양인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박성천 기자skypark@kwangju.co.kr

/강진=남철희 기자chou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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