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김진구 우산중 교감] 우레탄과 DDT
2018년 05월 22일(화) 00:00 가가
운동장에 만국기가 걸렸다. 체육대회 날이다. 며칠 전부터 날씨 예보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옛날에는 비 걱정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미세먼지에 더 민감하다. 건강을 위한 체육대회가 미세먼지를 더 깊이 마시는 몸 망치는 날이 되기 쉽다. 앞으로는 학사 일정을 짤 때 체육대회만큼은 몇 차례 연기가 될 것을 가정하고 계획해야 할 것 같다.
본관 3층에서 시작하여 부챗살로 퍼져나가 운동장 건너편 느티나무에 묶인 여섯 줄에 여러 나라 국기가 펄럭인다. 수평으로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저 국기들처럼 세상의 나라들도 평등할까. 어릴 적 국민학교(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가 떠오른 것도 만국기의 효력이다. 희한하게도 만국기만 보면 익어가는 감, 파란 하늘, 코스모스, 가을 운동회가 추억으로 펄럭인다. 유년의 기억 때문일 터이다. 유년의 체험은 마음에 짙게 물들어 평생을 함께 하기에 소중하다. 깊은 주름살의 흰머리 동창들이 저 만국기 아래로 뛰어 모일 것만 같다.
하늘에 만국기가 있다면, 땅에는 백회가루 흰 선이 들뜨게 한다. 계주 원형곡선과 단거리 직선이 선명하다. 운동장 둘레에는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소금을 뿌려 놓았다. 소금은 잡초 방제뿐만 아니라 보습도 좋아 심한 먼지도 잡아준다. 소금과 하얀 라인으로 운동장이 빛났다. 흙모래 운동장이 건강하게 보였다.
사제 축구 경기에 출전하였다. 학생과 공을 두고 다툴 때도 그렇지만 학생이 가까이만 와도 위축됐다. 모처럼 패스 받은 공을 잡으러 뛰어갔지만 마음만 공을 따라갈 뿐, 몸은 공하고 멀어만 갔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몇 차례 넘어져 얼굴은 흙 범벅이다. 30분을 뛰었는데 마지막에는 오고가는 공을 눈으로만 따라다녔다. 학생들은 날쌔고 강건했다. 스파이크에서 튀기는 흙모래에도 거침이 없었다.
2006년부터 인조 잔디와 우레탄이 학교 운동장의 흙모래를 덮기 시작했다. 선진화된 체육시설로 스포츠 복지국가를 앞당겨 실현한다는 기치 아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2016년 기준 전국 2700여 학교에 5000여억 원의 우리 세금을 쏟아 부었다. 인조 잔디와 우레탄을 깐 학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레탄 사업을 신청하여 선정된 학교의 교장은 큰 업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이 체육시설에는 납·카드뮴·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의 유해 화학물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해 물질에 대한 노출 빈도나 위해성에 대해 정부나 환경단체의 견해가 다르고 관련 규정이나 기준이 강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지만 10개 학교 중 8개 학교는 철거해야 한다. 10년 만에 다시 우리의 세금으로 걷어 내고 있는 중이다.
학교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인조 잔디와 우레탄 트랙을 모두 깔려면 약 3억 원 내외의 돈이 든다. 그런데 이를 철거하고 폐기하는데 6천만 원에서 1억 원, 다시 배수 시설하고 마사토 까는데 억대의 비용이 들어간다. 헛돈도 문제지만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학교 시설물에 어떻게 유해 물질이 섞여들어 올 수 있었을까. 특정 지역, 특정 제품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말이다.
“봄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아침은 이제 어색한 고요함뿐이다.”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1962년)에 나온 한 대목이다. 봄이 침묵한다는 이 책의 제목은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의 잘못을 소름 돋도록 상징하고 있다. 살충제로 사용된 맹독성 화학물질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의 폐해를 고발한 것이다. 운동장에 뿌려진 소금처럼, 백회가루처럼 이불에 베개에 내복에 뿌려지고, 머릿니나 서캐를 죽이기 위해 머리에도 이 백색 가루를 뿌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1942년부터 쓰기 시작한 DDT는 이 ‘침묵의 봄’으로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통해 생명체에 축적된다는 것이 알려져 1972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DDT는 30년 만에 금지됐고, 우레탄은 10년 만에 교체되고 있다.
그런데 어느 기관 누구 하나 반성의 소리는 없다. DDT는 ‘침묵의 봄’을 만들었고, 우레탄은 ‘침묵의 운동장’이 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이 아니면 흙을 밟아 볼 공간이나 시간이 없다. 이런 추세라면 가정과 학교 교육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흙놀이나 흙을 밟게 하는 체험학습이 좋은 교육과정의 하나로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늘에 만국기가 있다면, 땅에는 백회가루 흰 선이 들뜨게 한다. 계주 원형곡선과 단거리 직선이 선명하다. 운동장 둘레에는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소금을 뿌려 놓았다. 소금은 잡초 방제뿐만 아니라 보습도 좋아 심한 먼지도 잡아준다. 소금과 하얀 라인으로 운동장이 빛났다. 흙모래 운동장이 건강하게 보였다.
우레탄 사업을 신청하여 선정된 학교의 교장은 큰 업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이 체육시설에는 납·카드뮴·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의 유해 화학물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해 물질에 대한 노출 빈도나 위해성에 대해 정부나 환경단체의 견해가 다르고 관련 규정이나 기준이 강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지만 10개 학교 중 8개 학교는 철거해야 한다. 10년 만에 다시 우리의 세금으로 걷어 내고 있는 중이다.
학교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인조 잔디와 우레탄 트랙을 모두 깔려면 약 3억 원 내외의 돈이 든다. 그런데 이를 철거하고 폐기하는데 6천만 원에서 1억 원, 다시 배수 시설하고 마사토 까는데 억대의 비용이 들어간다. 헛돈도 문제지만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학교 시설물에 어떻게 유해 물질이 섞여들어 올 수 있었을까. 특정 지역, 특정 제품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말이다.
“봄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아침은 이제 어색한 고요함뿐이다.”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1962년)에 나온 한 대목이다. 봄이 침묵한다는 이 책의 제목은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의 잘못을 소름 돋도록 상징하고 있다. 살충제로 사용된 맹독성 화학물질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의 폐해를 고발한 것이다. 운동장에 뿌려진 소금처럼, 백회가루처럼 이불에 베개에 내복에 뿌려지고, 머릿니나 서캐를 죽이기 위해 머리에도 이 백색 가루를 뿌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1942년부터 쓰기 시작한 DDT는 이 ‘침묵의 봄’으로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통해 생명체에 축적된다는 것이 알려져 1972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DDT는 30년 만에 금지됐고, 우레탄은 10년 만에 교체되고 있다.
그런데 어느 기관 누구 하나 반성의 소리는 없다. DDT는 ‘침묵의 봄’을 만들었고, 우레탄은 ‘침묵의 운동장’이 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이 아니면 흙을 밟아 볼 공간이나 시간이 없다. 이런 추세라면 가정과 학교 교육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흙놀이나 흙을 밟게 하는 체험학습이 좋은 교육과정의 하나로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