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생각’] 생명을 건 목련의 모험
2018년 04월 12일(목) 00:00 가가
하얀 목련 꽃 그윽하게 벌어진 틈으로 꽃샘추위가 들이닥치고, 난데없이 모진 비바람까지 매섭게 다가왔다. 그렇잖아도 빠른 낙화가 아쉬운 목련 꽃이거늘, 비바람 못 이기고 속절없이 떨어질까 안달할 수밖에 없는 봄날이 사납게 지나간다.
목련이라 이름 부르는 나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종류로 백목련과 자목련이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9백여 종류나 된다. 수목원과 식물원과 같은 식물 연구 기관과 개인에 의해 우리나라에 수집된 종류도 7백 종류가 넘는다.
크게 나누면 흰색 꽃을 피우는 백목련 종류와 붉은 꽃의 자목련 종류가 있으며, 흔하지는 않지만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 볼 수 있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 황목련 종류가 있다. 그밖에 꽃 한 송이에 12장에서 40여 장의 꽃잎을 가지는 별목련 종류도 있다.
종류에 따라서 꽃 피우는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대개의 경우 흰색 종류부터 피어난다. 이어서 붉은색 꽃이 피어나고 그 뒤에 노란색 꽃이 피어난다. 피어 있는 시간은 짧지만 개화 시기가 제가끔 다른 목련 종류의 꽃이 4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봄 내내 다양한 종류의 목련 꽃을 볼 수 있다. 봄을 목련의 계절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이유다.
여러 종류의 목련 중에 으뜸은 아무래도 순백의 목련이지 싶다. 이른 봄, 잎 나기 전에 소담한 꽃송이를 피워 내는 하얀 목련의 고아한 아름다움은 목련 종류의 꽃 가운데 으뜸이다. 초록의 잎사귀와 함께 피어나는 자목련이나 황목련 종류의 꽃은 화려함에서 다른 목련을 능가한다 해도, 하얀 목련의 고아함을 넘지 못한다.
하얀 목련은 우선 여느 꽃들에 비해 일찌감치 피는 꽃이라는 점에서 긴 겨울을 보낸 사람들에게 반가움을 준다. 봄을 맞이한다는 꽃이라는 뜻에서 ‘영춘(迎春)의 꽃’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도 그래서다. 무채색의 긴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온몸을 활짝 펴고 본격적으로 봄을 맞이하게 하는 꽃이 하얀 목련 꽃이다.
물론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이 목련만 있는 건 아니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대개의 꽃이 그렇다. 산수유가 그렇고, 개나리도 그러하며 벚나무 역시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피어나는 여느 꽃들에 비해 목련은 꽃송이가 탐스럽고 화려한 까닭에 유난스레 눈에 들어온다.
잎 없이 하얀 꽃송이만 피워 올리기 때문에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잎 없이 꽃을 피우는 건 대단한 모험이다. 아예 생명을 통째로 내놓는 모험이다.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엄청난 일이다.
모든 생명에게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활동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일이다. 식물에게는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일이다. 꽃 피우는 순간에 식물은 일생 최대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 에너지를 식물은 스스로 만든다. 태양의 빛을 받아들이고,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린 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에너지를 만드는 광합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한 장의 잎도 없이 꽃을 피우는 목련은 그 순간 자신의 몸 안에 간직하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꽃송이에 쏟아부어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처음 꽃송이를 밀어 올린 지난해 늦은 봄부터 애면글면 기다려 온 절정의 순간이다. 꽃 한 송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양분을 소진하고 생명을 마칠 수도 있다.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잎이 없기에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잎 없이 화려한 꽃을 피우는 백목련 종류의 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는 건, 생명을 건 모험이 처연하게 이뤄 내는 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위기를 무릅쓰고도 생명을 이어 가려는 절박함이 꽃송이에 담겼다는 이야기다.
그게 벌써 일억사천 번이나 계속된 목련의 일생이다. 목련이 이 땅에 처음 꽃 피운 일억사천 년 전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거스르지 않은 목련의 안타까운 운명이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긴 세월 동안 이어 온 생명을 건 모험이다. 그동안 목련은 해마다 봄이면 이처럼 처절한 생명 활동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한 송이 꽃이 아름다운 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건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아름다운 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거는 순간일 수밖에 없다. 볼수록 아름다운 목련 꽃 한 송이에 담긴 생명의 진리를 새삼 되짚어 보게 되는 봄, 목련의 계절이다.
〈나무 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목련이라 이름 부르는 나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종류로 백목련과 자목련이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9백여 종류나 된다. 수목원과 식물원과 같은 식물 연구 기관과 개인에 의해 우리나라에 수집된 종류도 7백 종류가 넘는다.
종류에 따라서 꽃 피우는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대개의 경우 흰색 종류부터 피어난다. 이어서 붉은색 꽃이 피어나고 그 뒤에 노란색 꽃이 피어난다. 피어 있는 시간은 짧지만 개화 시기가 제가끔 다른 목련 종류의 꽃이 4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봄 내내 다양한 종류의 목련 꽃을 볼 수 있다. 봄을 목련의 계절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이유다.
물론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이 목련만 있는 건 아니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대개의 꽃이 그렇다. 산수유가 그렇고, 개나리도 그러하며 벚나무 역시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피어나는 여느 꽃들에 비해 목련은 꽃송이가 탐스럽고 화려한 까닭에 유난스레 눈에 들어온다.
잎 없이 하얀 꽃송이만 피워 올리기 때문에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하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잎 없이 꽃을 피우는 건 대단한 모험이다. 아예 생명을 통째로 내놓는 모험이다.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엄청난 일이다.
모든 생명에게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활동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일이다. 식물에게는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일이다. 꽃 피우는 순간에 식물은 일생 최대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 에너지를 식물은 스스로 만든다. 태양의 빛을 받아들이고,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린 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에너지를 만드는 광합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한 장의 잎도 없이 꽃을 피우는 목련은 그 순간 자신의 몸 안에 간직하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꽃송이에 쏟아부어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처음 꽃송이를 밀어 올린 지난해 늦은 봄부터 애면글면 기다려 온 절정의 순간이다. 꽃 한 송이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양분을 소진하고 생명을 마칠 수도 있다.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잎이 없기에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잎 없이 화려한 꽃을 피우는 백목련 종류의 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는 건, 생명을 건 모험이 처연하게 이뤄 내는 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위기를 무릅쓰고도 생명을 이어 가려는 절박함이 꽃송이에 담겼다는 이야기다.
그게 벌써 일억사천 번이나 계속된 목련의 일생이다. 목련이 이 땅에 처음 꽃 피운 일억사천 년 전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거스르지 않은 목련의 안타까운 운명이다.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긴 세월 동안 이어 온 생명을 건 모험이다. 그동안 목련은 해마다 봄이면 이처럼 처절한 생명 활동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한 송이 꽃이 아름다운 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건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아름다운 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거는 순간일 수밖에 없다. 볼수록 아름다운 목련 꽃 한 송이에 담긴 생명의 진리를 새삼 되짚어 보게 되는 봄, 목련의 계절이다.
〈나무 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