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공동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을 출범시키면서 국회 지형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3당에 이어 의석수 20석 이상인 네 번째 교섭단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조율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민주·의회 정치의 기본 취지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국민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특히, 호남에 기반을 둔 평화당이 5% 수준의 지지율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지역의 목소리를 국회에서 더욱 강력하게 대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공동교섭단체 구성의 가장 큰 ‘수혜자’는 평화당 소속 의원일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정의당이 평화당과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면서 내건 조건인 ‘공동교섭단체 20석 유지’와 관련이 있다.



지방선거 출마 사실상 봉쇄



애초 정의당은 협상 과정에서 평화당 측에 ‘소속 의원들의 지방선거 불출마 확답’을 강력히 요구했다. 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으로 간신히 교섭단체 구성의 자격 요건을 맞춰 놓은 상황에서 의원 한 명이라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이탈할 경우 교섭단체 구성 자체가 무산되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이유 있는’ 요구는 최종 합의문에서 “양당은 교섭단체의 안정적인 유지·발전을 위해 책임 있는 노력을 다한다”라는 문구를 집어넣는 것으로 수용됐다.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평화당 의원들의 지방선거 출마가 봉쇄된 셈이다.

문제는 이 합의문의 문구가, 지방선거 불출마 명분을 찾고 있던 평화당 소속 일부 의원들에게 ‘훌륭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지역의 이해관계와 목소리를 의회에서 더욱 충실하고 강력하게 반영하겠다는 게 공동교섭단체 구성의 목적이지만, ‘질 것이 뻔한’ 선거에 출마해 의원 배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는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린 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역민들이 지난 총선을 통해 호남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양당 체제를 정립해 준 것은 “양당이 경쟁하고 노력해서 지역 살림살이를 더 나아지게 해 달라”라는 것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평화당에서는 “국회에서 힘이 세진 만큼 지역 예산을 더 많이 따오고, 지역 관련 정책을 더 많이 마련할 수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상황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는 호남 출신 총리와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많은 호남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또 예산이나 정책 분야에서도 여당인 민주당이 호남의 민심을 충분히 살피고 배려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헌안에는 전문에 ‘5·18정신’이 들어가 있을 정도다. 이는 다시 말해, 지금은 평화당이 ‘호남의 이익을 위해’ 정부·여당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싸워야 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민들은 “평화당 소속 광주·전남 일부 국회의원들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핑계 삼아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려 한다”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지 기반인 광주·전남에서조차 한 자릿수 지지율에 그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고 명실상부한 호남 정당으로 부활하기 위해선 ‘의원 배지를 내던지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좌고우면하면 민심은 외면



‘현재로선 민주당을 이겨 낼 수가 없다’는 이유로 초선은 물론 중견 의원들까지도 시장·지사 선거 출마를 기피한다면, 평화당의 저조한 지지율 만회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남을 모태로 삼고 있는 정당이 당장 지지율이 낮고 당선이 어렵다고 광주시장·전남지사 선거에도 나서지 않는다면 ‘불임 정당’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테고, 결과적으로 오는 2020년 4월 치러질 21대 총선에서 민심의 심판에 직면할 것임이 분명하다.

광주·전남은 5·18민주화운동과 촛불 혁명으로 이어지는 시민·민주화 정신의 발상지다.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개인과 정당의 이해관계나 당리·당략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평화당도 고심을 했겠지만, 난국을 헤쳐 가기 위해선 좌고우면보다는 희생과 결단의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