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패럴림픽에서 한반도기의 독도 표기에 대한 이견으로 남북 공동 입장(入場)이 무산되었다. 남한은 독도가 삭제된 한반도기를 고집한 반면 북한은 독도 삭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독도는 남한 영토 내에 있으니 북한에 명분에서 크게 밀린 셈이다.

한반도기는 1991년 일본 지바현에서 개최된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 등에서 남북 단일팀의 단기(團旗)로 공식 사용되었다. 당시 남북 올림픽위원회는 ‘제주도’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독도, 마라도’ 등은 생략하기로 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독도를 그린 한반도기도 사용했다. 한반도기에 독도를 표기하든 말든 남북한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권고했다고 하지만 그 어떤 국제기구도 헌법상 강역 삭제를 권고할 자격은 없다. 더구나 그런 권고 뒤에 일본 측의 작용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문제다. ‘정치적 표현 금지’ 운운하지만 언제부터 헌법상의 영토가 ‘정치적 표현’으로 전락했나? 한국 측 관계자들이 IOC를 설득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 성조기의 별은 50개의 주를 나타낸다. 이중 미국 남부의 텍사스·뉴멕시코·콜로라도·애리조나주 등은 멕시코 강역이었다. 미국과 멕시코는 이를 두고 전쟁을 벌였고 미국이 승리하면서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령이 되었다. 멕시코가 이때의 패전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성조기에 별 몇 개를 빼라고 요구하면 IOC는 미국에 빼라고 권고할 수 있을까? 너무 명확한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변질시킨 것은 일본인데, 대한민국이 꿀 먹은 ○○○가 된 것이다.

지난 3월 21일 한중일 교육장관 회의 때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기술한 일본 고교 학습지도 요령 개정안의 수정을 일본 측에 촉구했다고 교육부에서 전했다. 그런데 ‘비공개’ 회담에서 항의했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동북아역사재단은 국고 47억 원을 들여 ‘동북아역사지도’를 제작했다. ‘한국고대사학회’ 등이 주축이 되었는데, 정작 ‘지도 사업’인데 지리학자는 형식상 한 명만 들어가고 60여 명 이상의 역사학자들이 만들었다. 그런데 독도를 모두 삭제했다.

이에 대한 물의가 일어 2015년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위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동북아역사재단은 5개월의 수정 기한을 주면서 수정을 요구했다. 당시 김호섭 재단이사장은 지도 제작진에게 ‘독도를 반드시 그려 오라’고 특별히 당부했으나 끝내 그려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 지도의 문제점은 독도뿐만 아니라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로 그려 북한 강역을 모두 중국에 넘겨주었고,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로 되어 있는 고려의 북방 강역을 함경남도 함흥평야로 무려 2천여 리 끌어내렸다.

이 지도가 공개되면서 그간 현란한 말로 국민을 속여 왔던 식민사학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도는 말과 달리 그림으로 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전쟁사는 한 장도 없고 ‘식민지 시기 행정구역’은 13장이나 그려 놓았다. 이 때문에 전 정권에서 폐기 조치된 ‘동북아역사지도’인데, 현 정권의 동북아역사재단이 다시 제작하겠다고 선언해 ‘동북아역사재단 해체 범시민연대’가 결성되는 등 시민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재제작하면 독도는 눈속임용으로 그려 넣겠지만 이 지도는 고쳐서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 지도를 비판했던 학자들과 공청회도 생략하고 밀실에서 재제작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정권이 강조하는 국민 소통과도 거리가 멀다.

나는 한 정권의 미래를 예견하는 잣대로 늘 역사 문제를 본다. 너무 친일적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를 높이겠다고 선언하고 3·1절 경축사에서는 일본의 독도 인식을 꾸짖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천명한 역사관과 ‘동북아역사지도’ 재제작 선언 등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다. 대통령이 천명한 역사관과 역사를 다루는 국가 기관이 걷는 방향이 계속 다를 경우 대통령이 천명한 역사관의 진정성에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