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한듯했던 빙상계 ‘파벌 악령’이 또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빙상인들의 축제가 돼야 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왕따 논란’으로 격려와 축하를 받아야 할 선수들이 눈물짓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선수끼리 반목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면에는 ‘내 선수·내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는 파벌싸움의 그림자가 짙다.

지난 19일 펼쳐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 결과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앞선 두 선수가 뒤로 처진 선수를 챙기지 않고 스퍼트하면서 ‘상대 팀을 추월한 게 아니라 같은 팀을 추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불똥은 선수들간 ‘왕따 주행’ 논란으로 튀었다. 김보름(강원도청)과 박지우(한국체대)가 노선영(콜핑팀)을 따돌렸다는 시각이다.

김보름과 백철기 대표팀 감독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전 약속에 따른 작전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노선영은 이를 반박하며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런 사태의 내면에는 뿌리 깊은 파벌의 반복이 도사리고 있다.

평창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김보름, 이승훈(대한항공) 등 일부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이 아닌 한국체대에서 특정인의 비호 아래 훈련을 받고 있다는 제보가 언론사에 날아들고, 자기 파벌 선수에게 불리하게 대표선발 규정이 바뀔 것 같으면 여론전을 펼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파벌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것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다. 당시 선수들은 ‘한국체대와 비(非) 한국체대’ 출신으로 나뉘어 훈련을 받았다. 당시 파벌 논란은 지금은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와 진선유가 나란히 남녀부 3관왕에 오르며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4년 뒤 밴쿠버 올림픽을 마친 뒤에는 국내 선발전에서 훈련장·지도자별로 나뉘어 서로 밀어주는 이른바 ‘짬짜미’를 했다는 현실이 알려져 큰 충격을 줬다.

2014년 소치 대회에서는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가 3관왕에 오르고 남자 대표팀이 노메달에 그치면서 쇼트트랙은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안현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귀화 배경이 빙상연맹의 전명규 부회장 때문이라고 지목했고, 결국 전명규 부회장은 자진사퇴했다. 이후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는 정리되는 듯했지만, 이제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이되면서 여자 팀추월에서 불거졌다.

빙상계의 파벌은 애초 한국체대와 비(非) 한국체대 사이 의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에서 비롯됐지만, 한국 쇼트트랙의 ‘대부’로 불리는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의 반목으로 집중되는 모양새다.

빙상연맹은 지난해 2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전명규 전 부회장을 3년 만에 다시 부회장으로 영입해 쇼트트랙뿐만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가 복귀하자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국체대 출신 선수들이 특혜 속에 훈련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연맹의 행정 실수가 나올 때마다 집행부의 물갈이를 주장했다.

이들이 반목하는 사이 애꿎은 선수들만 파벌싸움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한국체대에서 특혜 훈련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던 김보름과 이승훈은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의지가 꺾였고, 평창올림픽에서도 파벌 문제가 선수끼리 반목으로 비치는 형국이다.

이처럼 파벌 문제가 올림픽에서 매번 불거지는데도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빙상연맹은 해결 의지가 전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명규 부회장을 다시 영입하면 파벌 문제가 재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지만, 빙상연맹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금메달만 따기 위해 오히려 파벌을 방치하고 이용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올림픽’이 아닌 ‘선수들의, 국민의 올림픽’이 되도록 빙상연맹과 빙상인들의 심각한 자성이 필요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