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는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현대 건축의 조형 원리는 단지 르 코르뷔지에의 아류일 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가 설계한 롱샹 교회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상형문자’라는 칭송을 받는다. 그를 수식하는 찬사에는 항상 ‘20세기’라는 수사가 곁들여진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러나 그 명성에 걸맞은 완벽한 건축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대표작 빌라 사부아는 개인 주택인데 구조적 결함 때문에 입주하자마자 비가 샜다. 건축을 맡겼던 사부아 부부는 물매가 있는 지붕을 원했으나 르 코르뷔지에가 방수에 취약한 평평한 지붕을 고집한 탓이었다. 사부아 부부는 습기로 눅눅한 방에서 생활하던 아들이 병을 얻자 이사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얄궂게도 대한민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포항 지진에서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필로티(pilotis) 공법을 건축에 적용, 유행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로 기초 말뚝을 뜻하는 필로티는 사부아에도 적용됐다. 이 공법은 1층에 벽체 없이 기둥만을 세워 건물을 지탱한다. 이론상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을 보면 공법만을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10여 전 취재를 위해 들렀던 이 미술관은 르 코르뷔지에 작품답게 필로티 공법으로 건물을 들어 올리고 외벽에서 장식을 뺀 간결한 조형 언어를 보여 주고 있었다. 특유의 모던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일본에서는 1998년 지진 피해를 ‘없애기 위해’ 이 건물에 대한 보강 공사를 단행했다. 칼로 시루떡 자르듯 지반과 건물을 분리하고 그 틈새에 면진(免震) 장치를 설치한 것이다. 지진으로 땅이 흔들려도 건물에는 영향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 전문가들은 포항 지진 피해를 키운 주범은 필로티 공법이 아니라 부실시공이라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이번 지진 사태를 계기로 건물에 대한 내진 보강 공사가 진행되겠지만, 공법을 문제 삼는 것에 앞서 고층·대형 건물들에 대한 부실시공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는 등 근본 대책을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윤영기 사회부장 pen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