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 3루측 관중석에는 커다란 숫자가 두 개 걸려 있다. 7과 18. 영구 결번이 된 타이거즈의 레전드 이종범과 선동열의 등번호다. 선동열은 한국시리즈 여섯 차례 우승과 0점대 방어율 세 차례를 기록하며 ‘국보급 투수’라는 찬사를 받았고,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타격·수비·주루 플레이 등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37년 프로 야구 역사를 정리할 때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 할 정도로 이들의 플레이는 눈부셨다.

영구 결번은 은퇴할 때 등번호도 함께 은퇴시키는 제도로, 선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다. 프로 스포츠 최초의 영구 결번은 1935년 미식축구팀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 선수의 등번호인 1번. 야구에서는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가 1939년 루 게릭의 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그는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하며 2130경기에 연속 출전해 ‘철마’로 불렸지만 근위축성측색경화증(후에 루게릭병으로 불림)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가장 유명한 영구 결번은 재키 로빈슨의 42번.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그라운드 안팎의 인종 차별을 극복하며 야구를 ‘미국의 국민 스포츠’로 만든 공로로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로빈슨이 첫 경기를 치른 4월 15일이면 메이저리그 모든 선수가 등번호 42번을 달고 그를 추모한다.

한국 프로 야구에는 올해 지정된 이승엽까지 15명의 영구 결번이 있다. 한화·두산·삼성이 3명씩으로 가장 많고 KIA·LG는 각각 2명, 롯데·SK는 1명씩이다. 한국시리즈 11회 우승에 빛나는 최고 명문 구단 KIA. 스타도 많고 사연도 많은데 영구 결번이 2명뿐이라는 건 아쉽다. 원년 홈런왕 김봉연의 27번과 해태 시절 V9 금자탑을 쌓은 김응용 감독의 39번은 영구 결번 지정을 검토해 볼 만하지 않을까.

올 시즌 정규 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양손에 MVP 트로피를 들어 올린 양현종은 시상식에서 “영구 결번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등번호 54번을 챔스필드에 새겨 타이거즈의 전설이 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의 꿈은 팬들의 꿈이기도 하다.

/유제관 편집1부 부국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