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최대 공신인 정도전은 중앙 권력 강화와 왕실의 힘 약화를 위해 사병 혁파를 시도했다. 이에 수세에 몰린 이방원 등 신의왕후 한씨 소생 왕자들은 1398년 8월25일 사병을 동원, 정도전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세자 방석과 그의 형 방번을 살해했다.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이다.

이후 둘째인 방과가 세자가 되고 곧바로 정종으로 즉위했다. 그런데 정종과 정비 정안왕후 사이에 자식이 없자 세자 자리를 놓고 방원과 방간 간에 갈등이 벌어졌고 1400년 1월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것이 제2차 왕자의 난이다. 이 난에서 승리한 방원은 그해 11월 왕위를 물려받아 태종이 됐다. 친형제 간에 피를 부른 이 두 번의 난은 태조가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야기됐다.

그로부터 600여 년이 더 흐른 올 11월, 절대군주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른두 살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이 이달 초부터 사촌형 등 유력 왕자 최소 11명과 수십 명의 전·현직 장관 등을 긴급체포하는 등 숙청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평소 헬기를 잘 안 타던 왕자가 의문의 헬기 추락사를 당하고 왕자 일가족이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7대인 현 국왕인 살만은 2015년 1월 80세에 즉위하면서 자신을 마지막으로 형제 승계의 전통을 끊었다. 취임 직후에는 왕세제로 이복동생 무크린을 책봉했지만, 석 달 뒤 그를 실각시키고 대신 큰조카 무함마드 빈나예프를 제1 왕세자, 친아들 빈살만을 제2 왕세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이 구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빈살만이 지난 6월 친위부대를 동원해 사촌형 빈나예프를 감금하고 ‘왕세자’ 자리를 강탈했다. ‘제1차 왕자의 난’이다. 이후 빈살만은 권력 강화에 집중해 군·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이달 들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지난 4일 정예군을 동원해 잠재적 정적(政敵)인 사촌형 왕자들과 그의 측근들을 부패 혐의로 대거 체포하는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 무슨 일인가 싶다. 권력의 무서움을 또다시 느끼게 된다.



/박지경 서울취재본부 부장 j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