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4월 27일, 파블로 피카소는 파리 노천 카페 ‘드 마고’에서 놀라운 신문 보도를 접하게 된다. 하루 전날 독일 나치 공군 ‘콘도르 군단’이 스페인 북부에 있는 소도시 게르니카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는 뉴스였다. 당시 모국인 스페인은 공화국군과 프랑코 장군 휘하 반란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폭격기를 동원해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민간인 도시를 공격한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이었다.

피카소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끓어오르는 분노를 화폭에 옮겼다. 5월 1일 작품 스케치를 마치고, 5월 11일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해 6월 4일 붓을 내려놓았다. 피카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르니카’는 그렇게 탄생했다. 프랑코 총통이 죽고 스페인이 민주화된 후에야 미국에서 스페인으로 43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던 ‘사연 많은’ 그림이기도 하다.

같은 해 6월 말,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스페인 관에 걸린 ‘게르니카’를 본 한 나치 장교가 피카소에게 물었다. “이 그림을 당신이 그렸나?” 피카소가 답했다. “아니지, 이 그림은 당신들이 그렸지.”

지난 9월 초, 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서 ‘게르니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가로 7.8m×세로 3.5m 크기의 대작은 관람객을 단번에 ‘압도’했다. 그동안 미술 관련 책들에서 봤던 작은 크기의 그림과 달리 큼지막한 그림 앞에서 ‘전율’을 느꼈다. 전시실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엄마, 소리 높여 우는 말…. 관람객들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아비규환의 작품을 꼼짝도 않은 채 말없이 응시했다.

최근 읽은 소설 ‘암막의 게르니카’(인디페이퍼 펴냄)도 흥미로웠다. 일본 작가 하라다 마하가 쓴 이 소설은 1937년 파리의 피카소와 2001년 뉴욕의 큐레이터 요코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두 시점에서 생생하게 소설을 끌고 가는 핵심은 작품 ‘게르니카’이다.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수년째 전쟁 중이고, 어딘가에서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피카소가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요즘 한반도 정세가 심상찮다. ‘전쟁 없는 평화’를 염원하는 ‘게르니카’는 그래서 더욱 주목받는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