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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故 한창기 선생을 아시나요?

2017. 04.19. 00:00:00

“이 잡지만은 빌려주지 마세요.”
지난 1986년 4월 3일자 동아일보 5면에는 이색적인 문구의 광고가 실렸다. ‘샘이 깊은 물 ’4월호 발매를 알리는 광고카피였다. 광고는 ‘잡지를 빌려주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느새 ‘뿌리깊은 나무’(샘이 깊은 물의 전신)처럼 가장 많이 읽히는 잡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빌려주시면, 돌아온다손 치더라도 때묻고 해져 오기 십상이어서, 오래 간직하고 자주 꺼내 보시려는 독자는 생돈들여 보존판을 따로 사야 합니다. 게다가, 빌려주시지 말아야 발행부수가 계속해서 늡니다. 그리고 발행부수가 늘어야(많이 팔려야) 이 잡지의 내용을 끊임없이 더 살찌울 수 있습니다.”
잡지를 돌려 보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싶겠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읽을거리가 귀했던 터라 잡지나 만화책을 돌려 보는 사람이 많았었다. 특히 그 시절 ‘샘이 깊은 물’은 인문과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여성에겐 필독서였다.
내가 근무하는 광주일보 편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매월 초 잡지가 배달되는 문화부에는 ‘웨이팅 리스트’(대기자 명단)가 존재할 만큼 인기가 많았다. 당시 막내 기자였던 나는 선배들이 먼저 구독하고 난 후 너덜 너덜(?)해진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집에 가져가 방바닥에 배를 깔고 책장을 넘기며 탐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엇보다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진가는 콘텐츠였다. 특히 1976년 창간된 ‘뿌리깊은 나무’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표방했다. 또한 전문사진작가를 기용한 편집디자인과 자연생태, 우리말, 전통문화, 예술을 다룬 기획들은 매번 화제를 모았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건 발행인 고 한창기 선생(1936∼1997) 때문이다. 보성 벌교 출신인 그는 순천중, 광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출세가 보장된 법조인의 길을 거부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지사 창립자가 됐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폐간된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깊은 물’(1984∼2001년)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데 헌신했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이들 잡지와 인연을 맺은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 등 예술계 인사들이 최근 서울시청내 갤러리에서 20주기를 추모하는 ‘뿌리깊은 나무의 미래’전을 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고향인 지역에서는 이렇다 할 기념사업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더욱이 그의 삶과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순천시립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 쓸쓸한 20주기가 될 것 같다.
사실 문화적 측면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과 삶은 그 자체로 브랜드다. 그들의 삶과 업적을 스토리텔링화 해 캐릭터, 영화, 연극, 출판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하면 경쟁력 있는 문화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 인물마케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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