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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가문이 남긴 것

2017. 03.29. 00:00:00

뉴욕 맨하탄 53번가에 자리한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하 모마)은 근현대미술의 보고(寶庫)다. 19세기말 부터 21세기 현대까지 회화, 조각, 사진, 영화, 그래픽 아트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20만 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건물 중앙에 자리한 야외조각공원이 시선을 끈다. 삭막한 고층빌딩 사이에 공원이라니. 관람객들은 세계적인 조각작품과 나무, 꽃으로 단장된 공원벤치에 앉아 특별한 망중한을 즐긴다.
이 야외조각공원의 이름은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공원. 모마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1874∼1948)의 기부정신을 기리기 위해 명명됐다.
미국의 석유왕 존 D.록펠러(1874∼1960)의 부인인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는 1929년 탄생한 모마(MoMA)의 개관(開館)공신이다. 그녀는 뉴욕 사교계의 ‘마담 트리오’로 불렸던 메리퀸 설리반, 릴리 블리스와 함께 유럽에 필적한 만한 근현대 미술관을 뉴욕에 건립하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뉴욕은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블랙먼데이)쇼크로 최악의 불황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대부호의 부인이었던 세 사람은 천재적인 큐레이터 알프레드 바(모마 초대관장)의 미술관 건립 제안을 받고 흔쾌히 뜻을 모았다. 종종 유럽의 미술관들을 관람하면서 느꼈던 문화적 열등감(?)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이중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의 공이 가장 컸다. 록펠러 가문의 소유였던 미술관 부지를 기꺼이 내놓은 데 이어 피카소의 명작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걸작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후원금을 쾌척했다.
그녀의 문화후원은 여섯째 아들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feller·101)에 의해 절정을 이뤘다. 1915년 뉴욕에서 출생한 그는 1946년 가족이 소유한 체이스 내셔널 은행에 입사한 후 체이스맨해튼 코퍼레이션의 최고경영자를 지냈다. 형제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선사업을 주로 다루는 록펠러재단의 수장을 맡았다. 특히 그는 체이스맨해튼은행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기업의 사회공헌예산 중 일부를 문화·예술 분야에 할당하자고 건의해 미국사회에 메세나라는 용어를 알렸다.
무엇보다 그는 모친에 이어 모마의 큰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록펠러 가문이 오랜 세월 소장해 온 수백 점 작품을 기증하고 미술관 이사회 의장도 여러번 맡았다. 지난 2015년에는 자신의 100세 생일을 기념해 메인 주(州) 국립공원에 인접한 120만 평 이상의 부지를 기증하기도 했다.
최근 데이비드 록펠러가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자 미국 문화계가 큰 슬픔에 빠졌다. 특히 89세 생일을 맞았던 지난 2005년, 자신이 세상에 떠나면 모마에 1억달러(약 1300억 원)을 기부하라고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삼 록펠러 가문의 메세나가 조명을 받고 있다.
오늘날 뉴욕, 나아가 미국미술이 현대미술의 메카로 부상한 데에는 록펠러와 같은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밑거름이 됐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가문이 어디 없을까?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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