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변호사·장정희법률사무소]‘수탄장’을 걸으며
2017년 02월 13일(월) 00:00 가가
양 옆으로 부모와 아이들이 갈라서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어도 만질 수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소록도병원에서는 전염을 우려하는 한센병 환자의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했고,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소록도 내 경계선에서 한 달에 단 한 번 면회가 허용됐다고 합니다. 이 길은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자 가장 아픈 길인 ‘수탄장’ 입니다.
한센인들의 울음소리가 소록도를 울렸습니다. 13년 전 어느 변호사들이 그 곡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념 때문도 아니고 전시 상황이어서도 아닌, 국가가 정해놓은 감시선에 의해 철저히 격리된 부모와 자식들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새겨들었습니다.
부모 또는 자식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고통, 강제 단종·낙태로 인한 고통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해 13년 전 일본 변호사들과 한국 변호사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2016년 5월에서야, 일본국이 우리나라 한센인 595명에게 1인당 800만 엔을 보상하라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종·낙태로 인한 피해 배상 소송이 계속 중입니다.
저는 이제 갓 2년차가 된 새내기 변호사입니다. 광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으로서 영광스럽게도 지난 1월 열린 국립소록도병원 한센인권변호단 활동보고대회에 참석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한센인 소송 경과와 소회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한센인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찬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날이었지만, 멀리 일본의 변호사단도 참석했습니다. 일본 소송대리인단의 주축이 됐던 도쿠다 야스유키씨는 백발의 변호사였는데, 아마도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검은 머리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센인 소송을 하는 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고, 한센인들에 대한 보상이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렸음을 몸소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는 그 긴 시간 동안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신하지 못 한 채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건이 2년만 넘어가도 부담스러운데 10년이 넘어가는 세월 동안 얼마나 큰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을까, 감히 가늠해 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변호사는 ‘말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듣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물론 분노하는 소리, 우는 소리,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리 등 아주 작은 감정의 소리까지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한센인 인권 소송에 도움을 준 변호사들이 사실관계에만 집착하고 감정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결코 이번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많은 사건을 다뤄보거나 많은 의뢰인들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사건 상담을 하다 보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관계만을 잘 정리해서 이야기 하다가도, 그때 그때 감정에 복받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러한 감정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사건에 더 마음을 쓰게 하기도 합니다. 사실관계와 사건의 핵심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상담도 금방 끝나고 사건을 정리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건에 열정을 갖게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작은 감정의 소리까지도 귀 기울이려고 노력합니다.
감정의 소리로 열정에 불을 지피되, 법정에서는 구구절절한 감정에만 호소하려고 하지 않고 정확한 논리와 법리를 무기로 싸워야겠지요. 한센인 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센인들의 고통과 국가 폭력을 정확한 근거자료와 철저한 논리에 의해 입증하지 못했다면 소송에서 패했을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한센인들만큼이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이 사건에 임하지 않았다면 방대하고도 정확한 근거자료와 철저한 논리, 법리 구성은 어려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승소 판결이 나기까지는 변호사들의 공로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변호사들을 끝까지 믿어준 한센인 당사자들, 한센인 인권 신장을 응원하는 시민들, 국립소록도병원 직원 등이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응원을 보내고 관심을 보여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입니다. 변호사가 변호사법 제1조를 준수하며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이성 보다는 감성이, 사실 보다는 진실이 더 중요할 때가 있고, 변호사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일본변호사단과 한센인권변호단 그리고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박수를 보내며, 끝으로 아직 우리나라에서의 한센인 단종·낙태 소송 등이 남아 있으니 한센인 인권소송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직 아프고 추운 소록도에 따뜻한 위로를 보냅니다.
부모 또는 자식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고통, 강제 단종·낙태로 인한 고통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해 13년 전 일본 변호사들과 한국 변호사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2016년 5월에서야, 일본국이 우리나라 한센인 595명에게 1인당 800만 엔을 보상하라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종·낙태로 인한 피해 배상 소송이 계속 중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변호사는 ‘말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듣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물론 분노하는 소리, 우는 소리,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리 등 아주 작은 감정의 소리까지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한센인 인권 소송에 도움을 준 변호사들이 사실관계에만 집착하고 감정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결코 이번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많은 사건을 다뤄보거나 많은 의뢰인들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사건 상담을 하다 보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관계만을 잘 정리해서 이야기 하다가도, 그때 그때 감정에 복받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러한 감정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사건에 더 마음을 쓰게 하기도 합니다. 사실관계와 사건의 핵심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상담도 금방 끝나고 사건을 정리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건에 열정을 갖게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작은 감정의 소리까지도 귀 기울이려고 노력합니다.
감정의 소리로 열정에 불을 지피되, 법정에서는 구구절절한 감정에만 호소하려고 하지 않고 정확한 논리와 법리를 무기로 싸워야겠지요. 한센인 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센인들의 고통과 국가 폭력을 정확한 근거자료와 철저한 논리에 의해 입증하지 못했다면 소송에서 패했을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한센인들만큼이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이 사건에 임하지 않았다면 방대하고도 정확한 근거자료와 철저한 논리, 법리 구성은 어려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승소 판결이 나기까지는 변호사들의 공로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변호사들을 끝까지 믿어준 한센인 당사자들, 한센인 인권 신장을 응원하는 시민들, 국립소록도병원 직원 등이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응원을 보내고 관심을 보여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입니다. 변호사가 변호사법 제1조를 준수하며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이성 보다는 감성이, 사실 보다는 진실이 더 중요할 때가 있고, 변호사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일본변호사단과 한센인권변호단 그리고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박수를 보내며, 끝으로 아직 우리나라에서의 한센인 단종·낙태 소송 등이 남아 있으니 한센인 인권소송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직 아프고 추운 소록도에 따뜻한 위로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