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하남산단에서 지난해 남영전구 수은 유출 사고에 이어 수년 동안 전국에서 가장 많은 1급 발암물질이 대기 중으로 확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 대단위 주거단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하남3지구와 수완지구 주민들은 매년 하남산단에서 배출되는 유독성 물질에 의한 악취로 고통을 호소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광주시는 이 같은 주민들의 고통과 불안에도 ‘규제할 근거가 없다’라는 이유로 실태파악이나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12일 광주시와 광산구에 따르면 하남산단 내 인근 주거지역에서 접수된 악취관련 민원은 지난 2013년 38건, 2014년 33건, 지난해 29건이었다가 올해 들어서는 7월 현재 24건에 달한다.

또 하남산단 내에서 접수된 악취 민원도 지난 2013년 1건에서 지난해 17건으로 급증했고, 올 7월 현재도 17건이나 된다.

1급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이하 TCE)은 드라이클리닝 후 세탁물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악취가 발생한다.

세방산업이 6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많은 1급 발암물질을 배출해왔지만 광주시는 그동안 실태파악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세방산업이 대기중으로 배출한 TCE는 지난 2012년 439t 등 지난 2014년까지 6년 동안 무려 1570t에 달한다.

광주시는 지난 3월에야 환경부로부터 세방산업 주변의 환경오염이 우려된다는 공문을 받고 실태파악에 나섰다. 광주시가 지난 4월 보건환경연구원에 의뢰해 세방산업 내 TCE 배출농도를 측정한 결과 정제추출시설의 농도는 59.32ppm이었다.

환경부가 내년부터 TCE 신규 배출시설의 허용기준을 50ppm 이하로, 기존 시설에 대해서는 오는 201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85ppm 이하로 제한하기로 한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이 같은 수치에도 불구하고 광주시가 취한 조치는 저감대책 마련 요구가 전부다. 내년에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 그때부터 규제에 나서겠다는 게 광주시의 생각이다.

수완지구 한 주민은 “매년 여름이면 창문을 열지도 못할 정도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 광주시가 그동안 아무런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며 “주민들의 목소리에만 귀기울였어도 이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광주시와 정부, 세방산업이 TCE 피해 조사와 함께 근본 대책마련에 나서야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하남산단은 화학산단이 아닌 일반산단으로 광산구 흑석사거리를 중심으로 하남3지구, 인구 8만이 사는 수완지구, 운남지구 등 대단위 주택단지가 코앞에 위치하고 있다. TCE는 과다 노출 시 중추신경 억제와 간·신장 손상, 호흡곤란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기업 이익을 위해 발암물질을 매일 1t 가까이 쏟아낸 것은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며 “기업과 광주시, 정부는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세방산업 관계자는 “현재까지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배출량이 아니라 작업장 내 농도”라며 “사용한 TCE는 3단계 저감장치를 통해 배출돼 관련법을 준수하고 있고, 추가 저감시설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시 관계자는 “기준은 없지만 하반기부터는 한 달에 1차례씩 오염도 검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