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전투기조종사, 나주에 농부로 착륙하다
2025년 04월 22일(화) 09:30
정부일씨, 고관절 부상·코로나에 조종사 접고 새로운 길 모색
“식물형 공장 세우고 도심형 농업 구상…지역 경제·유통 연결”

정부일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돌보고 있다. <정부일씨 제공>

전직 전투기 조종사였던 정부일(43)씨는 현재 나주 남평읍에서 초보 농부로서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일구고 있다. 그는 전투기 조종사에서 부동산 개발 시행업자, 그리고 농부로 직업을 바꿔가며 인생의 궤적을 변화무쌍하게 그려왔다.

전업 1년차 초보 농부인 그는 “농사의 매력은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빠르게 나온다는 것”이라며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향후 직업을 유통업으로 확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다양한 도전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재미’였다. 그는 “자유을 억압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고, 무슨 일이든 재미가 있어야 살아있음을 느껴 새로운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정 씨는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군무원 아버지의 영향으로 전투기 조종사를 선망했다. 2006년 조종 장학생 11기로 선발된 정 씨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비행 훈련을 받기 시작해 전투기 조종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2016년 고관절과 골반의 심각한 부상으로 비행 부적합 판정을 받으며 조종사의 꿈은 예상보다 일찍 중단됐다.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진단결과에도 그는 꾸준한 재활 끝에 미국에서 신체검사 1등급을 받고 운행 면장을 취득했다.

미국에서 조종사 면허 취득 하던 시절의 정 씨.
“희망 전역하고 비행 면장을 취득하면서 조종사 경력을 이어가려던 때 코로나19로 항공사 고용 시장이 위축됐어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다보니 비행에 대한 열망은 잠시 접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공군 작전사령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로부터 부동산 개발 시행업을 접했고, 그는 생계를 위해 광주에 있는 시행사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 씨는 “부동산업은 숫자 싸움이다. 조종사도 비행 패턴이나 중력 같은 부분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다보니 다행히 일을 배우는 데 유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 큰 프로젝트를 경험하기 위해 서울로 이직해 주말부부의 삶을 살았지만 아내의 건강 문제로 타지 생활을 접고 광주로 돌아와 귀농을 결심했다.

“저는 정부지원금으로 땅을 사고 시설을 짓고, 보조시설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농업을 향후 6차 산업이 아닌 하나의 시행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도적인 일을 꿈꾸는 저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그는 지난해 6월 유러피안 상추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 올해 1월 파종해 이제서야 거둬들이기 시작한 초보 농부 정 씨는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그는 지역의 지식산업센터 내 공실을 활용해 식물공장을 설립하고 도심형 농업을 연결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농업은 혁신적으로 접근하면 무수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시행업에서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지역 경제와 유통을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에게 직업은 단순한 생존 도구가 아닌, 자신을 확장하고 더 큰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오랜 꿈이었던 조종일을 그만둔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정 씨는 “죽기 전 눈감을 때 스스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면서 “꼭 성공하지 않더라도 얻는 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경험을 계속 축적하며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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