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1974년 ‘세계우표사’
2016년 01월 27일(수) 00:00 가가
작은 네모 속 큰 세상
취미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이 아마도 독서와 음악감상이 아닐까. 1980∼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될 듯하다. ‘우표수집’.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정성스레 우표를 모았던 기억이 난다. 동행한 사진기자 역사 우표를 모았던 적이 있단다. ‘응답하라 1988’의 ‘7수생’ 정봉이의 취미도 우표수집이었다.
광주시 북구 누문동 수창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세계 우표사’는 현재 광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전문 우표상이다. 처음 문을 연 게 1974년. 한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42년을 이어오고 있다.
10평 규모의 작은 공간에 가득한 이런 저런 우표 구경을 하는데 신세계가 따로 없다. 지금까지 발행된 우표 가운데 해방 이전 것 몇가지를 제외하고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된다. 1884년 11월 17일 발행한 최초 우표 ‘오문’과 기념우표 1호인 ‘어극’ 부터 북한 우표까지 다채롭다. 1975년 슈바이처 박사 탄생 100년을 맞아 우표를 발행했다는 건 의외다. 2015년에 발행된 ‘밤하늘 별자리 이야기’는 하나의 예술품이다.
유명한 우표 수집가로 알려진 루스벨트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우표수집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오히려 많다’고 했다는데 맞는 말이다 싶었다.
이규식(67) 대표는 지역 우표 수집 역사와 함께 해온 인물이다. ‘학생우표사’로 문을 연 후, 1979년 즈음 세계우표사라는 이름을 달았다. 사글세로 시작한 가게는 전세를 거쳐 지금은 가게가 들어선 건물을 소유한 주인이 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새로운 우표가 발행될 때면 인근 광주일고생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곤 했죠. 점심 때면 밥을 못 먹을 정도였어요. 초등학생들이 길게 줄서서 우표를 사가던 모습도 흔했죠. 우표를 구입하기 위해 광주우체국에서 황금동까지 긴 줄이 늘어서 있던 건 흔한 풍경이었구요.”
이 대표는 항상 무엇인가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땐 메리야스 상표, 껌종이 등을 모았었다. 처음 우표와 인연을 맺은 건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특히 순천 매산중 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그는 선교사들과 친해지면서 많은 우표를 얻었다. 우체국 심부름도 다니면서 본 예쁜 우표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우체국 집배원을 거쳐 군에 입대, 군사우체국에서 일했다. 당시 상무대 참모들 사이에서 우표 수집붐이 일었고 그 중심에 이씨가 있었다.
군 제대 후 가게를 열고 무척 힘들었을 당시 잊을 수 없는 손님을 만났다. 나이도 어린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군에 입대한다며 상당히 많은 양의 우표를 공짜로 넘겨줬다. 자식 같은 우표를 판 적도 있다. 1980년 즈음, 광주우체국장이 그를 불렀다. “모 회장이 우표를 사려고 하는데 자네가 갖고 있는 걸 가져오소.” 주공아파트 값이 400만원이었던 시절, 500만원을 받았다. 몇년 후엔 1700만원 어치를 팔기도 했다. 당시 우표를 구입한 이가 서울 우표상들에게 진품 여부를 확인했고,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 거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두번이나 도둑이 들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표 수집의 역사는 길지만 가장 붐이 일었던 건 1970년대 후반이었다. 무엇보다 대통령 우표가 인기가 많았다. 1978년 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에 이어 1979년 카터 대통령이 방한하던 당시 기념우표는 인기 절정이었다. 육영수 여사 서거 추모 우표는 처갓집 돈까지 다 빌려서 사과 박스로 구입해 많은 이익을 얻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도 많이 판매했다. 당시 광주에서는 워낙 인기가 많아 구입이 어려웠다. 집배원으로 근무했을 당시 동기들에게 연락해 잘 팔리지 않았던 강원도와 부산에서 우표를 공수해 와 팔았었다.
1992년 화니백화점에서 국내 처음으로 북한우표 전시회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 2004년에 발행된 ‘독도의 자연’ 우표 시리즈도 인기가 많아 190원짜리가 8만원까지 거래되며 1974년 30원하던 ‘맹호도’는 지금 1만원 정도에 팔린다. 이 대표가 가장 아름다운 우표로 꼽은 건 세계문화유산 시리즈다. 은은한 색감이 한편의 그림같다.
외국 우표는 당시 유행이던 펜팔을 통해 교류했다. 마침 가게 바로 옆에 펜팔사가 있어 세계 각국으로 편지를 보내 서로 우표를 교환했다. 1974년엔 우표 발행일이면 광주 우체국 창구에서 약속인 한듯 자주 만나던 이들이 알음알음 모여 ‘세계 우취회’를 조직했고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1월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우표는 모두 3099종이다. 1년에 20∼25건(약 60여종) 정도를 만날 수 있다. 한창 때는 종별로 300∼400만장까지 발행했지만 지금은 평균 100만장 정도 발행한다.
올해는 첫 출시 우표였던 원숭이 연하 우표에 이어 카이스트 50주년, 소록도 병원 100년, 한불 수교 130년, 한국의 금관, 이중섭 탄생 100년 기념우표 등이 대기중이다.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셈이다.
“우표에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또 식물 도감이고, 조류도감이기도 합니다. 교육적 가치가 엄청나죠. 예전엔 변변한 놀이문화가 없어 우표 수집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요즘에도 가끔 모으는 사람은 있기는 한데 길게 가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부모님들이 수집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구요.”
우표만을 수집하는 것보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게 더 값어치가 있다. 발행 첫날 소인이 찍힌 우표를 ‘초일봉투’라고 하는데 가격이 2배 이상이다.
이 씨는 지금 나오는 우표부터 차근 차근 모으는 게 좋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깨끗이 보관하는 것이다. 이씨가 보관하고 있는 50여년전 우표도 이제 막 발행된 우표처럼 정갈하다. 또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또 단순히 수집을 넘어 하나의 ‘테마’를 정한 뒤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의미 있다. 이씨는 전 세계 호랑이 우표를 모은 ‘호랑이’ 작품으로 우표전시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1985년까지 17개까지 운영되던 우표상은 15년 전쯤 다 없어지고 세계우표사만 남았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찾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참 힘듭니다. 이곳이 없어지는 건 제 혼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요. 누군가 우표를 좋아하고, 사명감 있는 사람이 이어가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우표 수집가들의 명맥을 이어가려면 이 공간이 꼭 있어야하는데 말이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해야죠.”
이런 저런 우표 구경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은 우표 안엔 온 세상이 담겨 있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10평 규모의 작은 공간에 가득한 이런 저런 우표 구경을 하는데 신세계가 따로 없다. 지금까지 발행된 우표 가운데 해방 이전 것 몇가지를 제외하고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된다. 1884년 11월 17일 발행한 최초 우표 ‘오문’과 기념우표 1호인 ‘어극’ 부터 북한 우표까지 다채롭다. 1975년 슈바이처 박사 탄생 100년을 맞아 우표를 발행했다는 건 의외다. 2015년에 발행된 ‘밤하늘 별자리 이야기’는 하나의 예술품이다.
유명한 우표 수집가로 알려진 루스벨트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우표수집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오히려 많다’고 했다는데 맞는 말이다 싶었다.
이 대표는 항상 무엇인가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땐 메리야스 상표, 껌종이 등을 모았었다. 처음 우표와 인연을 맺은 건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특히 순천 매산중 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그는 선교사들과 친해지면서 많은 우표를 얻었다. 우체국 심부름도 다니면서 본 예쁜 우표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우체국 집배원을 거쳐 군에 입대, 군사우체국에서 일했다. 당시 상무대 참모들 사이에서 우표 수집붐이 일었고 그 중심에 이씨가 있었다.
군 제대 후 가게를 열고 무척 힘들었을 당시 잊을 수 없는 손님을 만났다. 나이도 어린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군에 입대한다며 상당히 많은 양의 우표를 공짜로 넘겨줬다. 자식 같은 우표를 판 적도 있다. 1980년 즈음, 광주우체국장이 그를 불렀다. “모 회장이 우표를 사려고 하는데 자네가 갖고 있는 걸 가져오소.” 주공아파트 값이 400만원이었던 시절, 500만원을 받았다. 몇년 후엔 1700만원 어치를 팔기도 했다. 당시 우표를 구입한 이가 서울 우표상들에게 진품 여부를 확인했고,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 거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두번이나 도둑이 들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표 수집의 역사는 길지만 가장 붐이 일었던 건 1970년대 후반이었다. 무엇보다 대통령 우표가 인기가 많았다. 1978년 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에 이어 1979년 카터 대통령이 방한하던 당시 기념우표는 인기 절정이었다. 육영수 여사 서거 추모 우표는 처갓집 돈까지 다 빌려서 사과 박스로 구입해 많은 이익을 얻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도 많이 판매했다. 당시 광주에서는 워낙 인기가 많아 구입이 어려웠다. 집배원으로 근무했을 당시 동기들에게 연락해 잘 팔리지 않았던 강원도와 부산에서 우표를 공수해 와 팔았었다.
1992년 화니백화점에서 국내 처음으로 북한우표 전시회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 2004년에 발행된 ‘독도의 자연’ 우표 시리즈도 인기가 많아 190원짜리가 8만원까지 거래되며 1974년 30원하던 ‘맹호도’는 지금 1만원 정도에 팔린다. 이 대표가 가장 아름다운 우표로 꼽은 건 세계문화유산 시리즈다. 은은한 색감이 한편의 그림같다.
외국 우표는 당시 유행이던 펜팔을 통해 교류했다. 마침 가게 바로 옆에 펜팔사가 있어 세계 각국으로 편지를 보내 서로 우표를 교환했다. 1974년엔 우표 발행일이면 광주 우체국 창구에서 약속인 한듯 자주 만나던 이들이 알음알음 모여 ‘세계 우취회’를 조직했고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1월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우표는 모두 3099종이다. 1년에 20∼25건(약 60여종) 정도를 만날 수 있다. 한창 때는 종별로 300∼400만장까지 발행했지만 지금은 평균 100만장 정도 발행한다.
올해는 첫 출시 우표였던 원숭이 연하 우표에 이어 카이스트 50주년, 소록도 병원 100년, 한불 수교 130년, 한국의 금관, 이중섭 탄생 100년 기념우표 등이 대기중이다.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셈이다.
“우표에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또 식물 도감이고, 조류도감이기도 합니다. 교육적 가치가 엄청나죠. 예전엔 변변한 놀이문화가 없어 우표 수집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요즘에도 가끔 모으는 사람은 있기는 한데 길게 가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부모님들이 수집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구요.”
우표만을 수집하는 것보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게 더 값어치가 있다. 발행 첫날 소인이 찍힌 우표를 ‘초일봉투’라고 하는데 가격이 2배 이상이다.
이 씨는 지금 나오는 우표부터 차근 차근 모으는 게 좋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깨끗이 보관하는 것이다. 이씨가 보관하고 있는 50여년전 우표도 이제 막 발행된 우표처럼 정갈하다. 또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또 단순히 수집을 넘어 하나의 ‘테마’를 정한 뒤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의미 있다. 이씨는 전 세계 호랑이 우표를 모은 ‘호랑이’ 작품으로 우표전시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1985년까지 17개까지 운영되던 우표상은 15년 전쯤 다 없어지고 세계우표사만 남았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찾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참 힘듭니다. 이곳이 없어지는 건 제 혼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요. 누군가 우표를 좋아하고, 사명감 있는 사람이 이어가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우표 수집가들의 명맥을 이어가려면 이 공간이 꼭 있어야하는데 말이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해야죠.”
이런 저런 우표 구경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은 우표 안엔 온 세상이 담겨 있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