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은 살아 있음을 뜻한다. 반대로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물조차도 움직임 없이 고여 있으면 썩는다. 죽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이동성 즉,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가 죽어가고 있다. 계층 간 움직임이 정체를 넘어 막히고 있다. 계층 간에 성벽이 존재하고 그것을 타 넘을 수 있는 사다리마저 치워지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의 ‘이동성’을 경고하는 두 개의 리포트가 발표됐다. 그것도 진보 성향의 연구소가 아닌 국책기관에서 나왔다.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병이 깊어가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지난 2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소득분배 변화와 정책 과제’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동 보고서는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계층 상승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빈곤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동시에 최상위 고소득층으로의 소득 쏠림 현상도 계속 심화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부익부빈익빈’의 씁쓸한 현실을 확인시켜준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서민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일자리’를 얻어 열심히 사는 길뿐이다. 지금껏 그래왔다. 한데, 이 공식이 깨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게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거의 절반에 가깝다.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반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 계층 상승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격차가 심하고, 영세자영업자도 유난히 많아 계층 이동은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고령화 속도마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노인들이 노동시장을 기웃거리고 있지만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50%에 이른 노인빈곤율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전 연령층에 걸쳐 계층 상승의 사다리 자체를 아예 오를 수조차 없는 이들이 그야말로 폭증하고 있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누가 뭐래도 ‘교육’이다. 지금은 먼 옛날 얘기로 들리지만,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교육’이 사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교육은 ‘계층 상승 사다리’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계층 대물림의 통로’ 혹은 ‘계층 고착화의 도구’가 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의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세대 간 계층 대물림 현상이 최근 들어 다시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자식 간 학력 상관계수와 사회경제적 지위 상관계수 모두 다시 높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부모의 학력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식의 학력과 사회경제적 지위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역으로, 부모의 학력과 지위가 낮을수록 자식의 그것들도 그만큼 낮아지고 있다. 학력이나 사회경제적 지위마저도 물리적 재산처럼 상속되고 있는 것이다.

계층 상승 혹은 이동의 통로가 막히고 있다. 좋은 일자리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교육 기회마저 불평등해지고 있다. 계층 상승 혹은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가 중세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부모의 지위나 계층에 의해 자손의 삶이 결정되던 중세 시대와 부모의 재산과 교육 정도에 의해 자손의 삶이 결정되는 오늘의 시대가 다른 점은 없다.

물길이 뚫려 있어야 물은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계층 이동의 통로를 활짝 열어줘야 사회는 병들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비정규직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교육이 ‘백년지대계’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교육을 통해 성장했음을 잊으면 안 된다.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방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 된다. 돈과 지위가 교육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독일이 유독 강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누구나 마음 먹으면 타고 넘을 수 있는 튼실한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해내야 한다. 그게 건강한 사회다.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