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은 늘 웃음 속에 싸여있다. 텔레비전을 켜도, 신문을 펼쳐도, 인터넷에 접속해도 가장 먼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웃음이다. 웃음은 이미 돈으로 환산되고 있고 전문적으로 웃음을 만드는 직업이 커다란 산업으로 자리 잡은 마당에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경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웃음을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고달픈 삶을 달래기 위해 웃음의 대가로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지친 삶을 달래줄 웃음에 늘 목말라 했고, 그들의 웃음은 그들이 남긴 문학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그는 서울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관직에는 큰 뜻이 없었다. 혼탁한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탐탁찮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1778년, 가족을 이끌고 황해도 금천군 연암골로 숨어들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홍국영의 눈 밖에 났던 게 화근이었다.

박지원을 아꼈던 유언호는 서울을 떠나 있을 것을 권유하였고, 박지원은 그의 말대로 연암골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그곳이 바로 박지원의 서재 연암산방(燕岩山房)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그 때문에 죽을 때까지 연암이란 호를 썼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고 이때의 견문을 정리하여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를 쓰게 된다. 이 책이 등장하자 젊은이들은 그의 문체를 따라 썼고, 박지원의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들은 정조 임금은 당시 선비들의 문체가 예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박지원에게 있다고 여겼다. 정조가 문제 삼은 것은 문장이 순정하지 못하고 경박하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는 박지원에게 반성문을 지어 올리게까지 하였다. 그의 문장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날 박지원은 집안사람들이 굶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박제가에게 알리며 돈 좀 꿔달라는 편지를 썼다. 아울러 술도 한 병 보내달라고 하였다. 세상에 집안사람들이 모두 굶고 있는 마당에 웬 술타령이란 말인가? 이런 부탁을 받은 박제가는 어떻게 했을까? 얼마 되지는 않지만 우선 이 돈으로 쌀을 사서 허기나 채우라며 편지를 전하는 종놈에게 돈 2백전을 들려 보냈다. 그리고는 편지 끝에 한 마디 썼다. “술은 없습니다. 세상에 양주학이 있겠습니까?”

옛날에 네 사람이 함께 앉아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고 싶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허리춤에 1만 관(貫)을 차고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네.”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학(鶴)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 되고 싶네.” 그러자 나머지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허리춤에 1만관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 하늘을 날고 싶네.” 앞선 세 사람의 소원도 모두 쉬운 게 아니다. 양주학(揚州鶴)은 바로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이루고 싶어 하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가리킨다. 세상에 어찌 양주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돈 2백전을 마련하는 것도 내게는 힘에 부치는 일인데, 어찌 술까지 보낼 수 있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술은 보낼 수 없습니다. 빈병으로 돌려보냅니다. 하지만 빈 술병을 받은 박지원은 박제가의 우정을 마음 깊이 새겼을 것이다.

박지원은 한 시대의 선구자였지만 그의 삶이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런 속에서 그의 문학은 탄생한 것이다. 그의 문학에 담긴 해학과 유머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웃음을 찾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늘 양주학의 유혹에 빠져든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연암산방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만 박제가의 빈 술병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