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의 세상만사] 5개월 만에 풀린 ‘고르디우스의 매듭’
2014년 12월 05일(금) 00:00 가가
시골 촌뜨기가 어쩌다 서울에 가면, 길을 모르니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에 오르면 목적지만 말하고 난 뒤 얼른 입을 닫았다. 섣불리 말하다 보면 사투리가 튀어나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아, 촌놈이 탔구나.” 택시 기사가 금방 눈치를 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택시미터(taximeter)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요금 올라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철렁하는데. 행여 기사가 돈을 좀더 받기 위해 일부러 멀리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촌놈들은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벌건 대낮에도 코를 베어 간다는 서울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달라졌다.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은 1호선부터 9호선까지 말 그대로 사통팔달(四通八達). 수인선·분당선·경춘선 등 경기도·강원도 일부에 인천공항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없게 됐고. 지하철을 타면 바가지요금 같은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으니. 우리 같은 서민들, 우리 같은 촌놈들로서는 참으로 좋았다. 덜렁 1호선뿐인 광주엔 언제쯤 이리 좋은 세상이 올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광주 도시철도(지하철) 2호선 건설 이야기다. 그동안 건설이냐 포기냐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급기야 연기론까지 나왔다. 그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것은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처럼 보였다. 그 옛날 고르디우스는 제우스 신에게 바칠 마차를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게끔 신전 기둥에 복잡하게 묶어 매듭을 지었다.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수백 년이 흘러 이 지역을 지나가던 알렉산더 대왕은 단칼에 매듭을 잘라 버렸고 실제 아시아를 정복하게 됐다.
지하철 2호선 시민이 원했다
그렇다면 ‘재정 악화’라는 기둥에 단단히 묶인 광주 지하철의 매듭은 누가 풀 수 있을 것인가. 길은 보이지 않고, 둘로 갈라진 광주 사회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최근 원안대로 건설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미 결론이 난 마당에 이제 와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때늦은 뒷북치기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쯤에서 지나온 과정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2호선 건설 논란은 지난 7월 취임한 윤장현 시장의 재검토 지시로 시작됐다. 재정 적자가 심하기 때문에 미래 먹거리에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따져 본 뒤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건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점에서 재검토해 보겠다.” 그런 말을 수차 반복했지만 시장의 속내는 건설을 포기하는 쪽에 훨씬 가까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윤 시장이 파악한 광주시의 재정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해마다 급증하는 사회복지비 예산에다 유니버시아드대회 운영·시설비, 세계수영선수권 개최, 군 공항 이전, 지하철·시내버스·제2순환도로 재정 보전 등등. 매년 빚을 내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되는 구조였다.
여기에 2호선 건설에 드는 최대 1조 원 안팎의 시비 부담. 개통 후 예상되는 운영 적자 등은 미래세대를 압박하는 요인일 수밖에 없었다. 돈! 돈! 돈! 결국 돈이 문제였다. 돈 말고 다른 문제는 없었다.
윤 시장은 결국 시의 열악한 재정 상태를 시민들에게 설명한 뒤 의견을 묻기로 했다. 시민들은 시의 재정난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교통 복지 등을 위해서는 2호선 건설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의견이 보다 우세했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지하철에서 수익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지하철은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 수단이 아니라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시장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대형 공사나 행사 등에 대한 냉혹한 점검이 필요하다.” “관성에 의해 달려가고 있는 미래 기관차를 한 번쯤은 세워 놓고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윤 시장은 이런 말들을 쏟아 냈다.
고집 꺾고 내린 외로운 결단
‘관성에 의해 달려가고 있는 미래 기관차’. 멋진 비유였지만 직접적으로 광주도시철도를 지칭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지하철에 들어갈 돈을 복지로 돌려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화롯불’이 되고자 하는 것은 ‘시민시장’으로서의 그의 위상에 걸맞은 것이기도 했다.
윤 시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온화한 사람이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해 본 사람들은 ‘어쩔 땐 매우 고집이 세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소신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 그런 윤 시장의 소신을 볼 때 2호선은 아무래도 안 되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지하철 건설의 길목에 빨간불이 켜지고 차단기가 내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끝내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윤 시장은 원래 건설과 개발 위주의 정책에 부정적 시각을 견지해 온 편이었다. 그럼에도 공익과 교통복지 및 인프라 구축을 바라는 시민들의 여론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일단 건설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2호선이 건설되면 1호선과 환승 연계되면서 대중교통 활성화란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은 물론 지하철의 효율을 보다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윤 시장은 손을 들었다. 며칠 전 “원안대로 도시철도 순환선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였다. 매듭을 묶은 이도 그였고 매듭을 푼 이도 그였다.
그는 ‘시민시장’답게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해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시민 여론에 따라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청와대의 ‘십상시’ 정도는 아니겠지만 광주시에도 무능과 독단의 ‘오상시’가 있다는 말까지 들려오는 판에 내린 고독한(?) 결정이었다. 그러니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제 광주시는 도시철도 2호선 국비 추가 확보 등을 위해 정부 및 국회 등과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택시미터(taximeter)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요금 올라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철렁하는데. 행여 기사가 돈을 좀더 받기 위해 일부러 멀리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촌놈들은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벌건 대낮에도 코를 베어 간다는 서울 사람들 아닌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광주 도시철도(지하철) 2호선 건설 이야기다. 그동안 건설이냐 포기냐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급기야 연기론까지 나왔다. 그만큼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다면 ‘재정 악화’라는 기둥에 단단히 묶인 광주 지하철의 매듭은 누가 풀 수 있을 것인가. 길은 보이지 않고, 둘로 갈라진 광주 사회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그렇게 5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최근 원안대로 건설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미 결론이 난 마당에 이제 와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때늦은 뒷북치기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쯤에서 지나온 과정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2호선 건설 논란은 지난 7월 취임한 윤장현 시장의 재검토 지시로 시작됐다. 재정 적자가 심하기 때문에 미래 먹거리에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따져 본 뒤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건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점에서 재검토해 보겠다.” 그런 말을 수차 반복했지만 시장의 속내는 건설을 포기하는 쪽에 훨씬 가까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윤 시장이 파악한 광주시의 재정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해마다 급증하는 사회복지비 예산에다 유니버시아드대회 운영·시설비, 세계수영선수권 개최, 군 공항 이전, 지하철·시내버스·제2순환도로 재정 보전 등등. 매년 빚을 내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되는 구조였다.
여기에 2호선 건설에 드는 최대 1조 원 안팎의 시비 부담. 개통 후 예상되는 운영 적자 등은 미래세대를 압박하는 요인일 수밖에 없었다. 돈! 돈! 돈! 결국 돈이 문제였다. 돈 말고 다른 문제는 없었다.
윤 시장은 결국 시의 열악한 재정 상태를 시민들에게 설명한 뒤 의견을 묻기로 했다. 시민들은 시의 재정난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교통 복지 등을 위해서는 2호선 건설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의견이 보다 우세했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지하철에서 수익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지하철은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 수단이 아니라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시장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대형 공사나 행사 등에 대한 냉혹한 점검이 필요하다.” “관성에 의해 달려가고 있는 미래 기관차를 한 번쯤은 세워 놓고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윤 시장은 이런 말들을 쏟아 냈다.
고집 꺾고 내린 외로운 결단
‘관성에 의해 달려가고 있는 미래 기관차’. 멋진 비유였지만 직접적으로 광주도시철도를 지칭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지하철에 들어갈 돈을 복지로 돌려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화롯불’이 되고자 하는 것은 ‘시민시장’으로서의 그의 위상에 걸맞은 것이기도 했다.
윤 시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온화한 사람이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해 본 사람들은 ‘어쩔 땐 매우 고집이 세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소신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 그런 윤 시장의 소신을 볼 때 2호선은 아무래도 안 되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지하철 건설의 길목에 빨간불이 켜지고 차단기가 내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끝내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윤 시장은 원래 건설과 개발 위주의 정책에 부정적 시각을 견지해 온 편이었다. 그럼에도 공익과 교통복지 및 인프라 구축을 바라는 시민들의 여론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일단 건설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2호선이 건설되면 1호선과 환승 연계되면서 대중교통 활성화란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은 물론 지하철의 효율을 보다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윤 시장은 손을 들었다. 며칠 전 “원안대로 도시철도 순환선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였다. 매듭을 묶은 이도 그였고 매듭을 푼 이도 그였다.
그는 ‘시민시장’답게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해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시민 여론에 따라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청와대의 ‘십상시’ 정도는 아니겠지만 광주시에도 무능과 독단의 ‘오상시’가 있다는 말까지 들려오는 판에 내린 고독한(?) 결정이었다. 그러니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제 광주시는 도시철도 2호선 국비 추가 확보 등을 위해 정부 및 국회 등과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