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4월에 취재 차 싱가포르-홍콩-선전-샤먼-상하이로 이어지는 11박12일 출장을 떠날 무렵, 중국 광동성과 홍콩 등지에서 낯선 병이 번졌다. 출국할 때 정체불명의 병인 ‘괴질’(怪疾)로 불리던 것이 어느새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렸다.

첫 행선지인 싱가포르와 달리 다음 목적지인 홍콩은 상황이 제법 심각해 보였다. 눈에 띄는 모든 남녀노소가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인터뷰 때에도 예의상 서로 마스크를 쓴 채로 진행했다.

TV에서는 어느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감염됐다는 등 사스 관련 뉴스가 연일 쏟아져 이러다 감염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호텔 객실로 올라가면서 북적거리는 엘리베이터 내 버튼을 누르지 않거나 아예 수십 초간 숨을 참기도 했다.

사스 감염의 우려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얇은 마스크 한 장뿐이었고, 상하이 한인식당에서 맛보는 마늘 한쪽과 김치 한 가닥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정작 귀국 때에는 발원한 현지보다도 국내의 경계심이 지나칠 정도여서 당황스러웠다. 행여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복기 동안 집에서 외부인과 접촉을 끊고 ‘자발적으로’ 칩거하다시피 해야 했다. 결국은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갔지만 정확한 정보 없이 유행병을 대하는 주변의 ‘과민반응’은 씁쓸하기만 했다.

최근 서부 아프리카 기니에서 발병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며 전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워낙 전염성이 강한데다 치료약도 마땅치 않아 이 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번지고 있다.

중세를 암흑기로 만든 페스트(흑사병)는 곰쥐 몸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전파됐고, 사스의 원인은 사향 고양이로부터 유래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는 ‘과일 박쥐’가 매개동물로 의심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와 같은 유행병을 하나, 하나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에볼라 바이러스 역시 전 세계적인 협력에 의해 머지 않아 평정되리라 믿는다.

/송기동 사회2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