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군과 광양시에 포함되어 있는 지리산의 56%, 백운산의 46%를 차지하는 광범위한 숲이 서울대학의 연습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서울대가 법인화로 변환하면서 국유재산인 지리산의 연습림을 사적 법인인 대학이 그대로 소유하겠다고 하여 주민들이 반발하며 나섰다.

서울 농생대는 어떤 대학인가? 서울대의 농생대는 수원에 있었는데 교수들이 주장하여 서울로 옮겨 갔다. 이는 미국에서 뉴욕주의 시골 코넬대학에 있는 농대를 번잡한 뉴욕시의 컬럼비아대학으로 이전한 꼴이다. 물론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는 농과대학이 없고, 또 다른 거대도시 LA에 있는 UCLA에도 농과대학이 없는 바, 그 이유는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수년 전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한창 각광을 받을 때 뉴스를 보니 서울 수의대의 실습농장은 충북에 있었다. 그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황 교수가 서울과 충북 사이를 오가며 엄청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가 만일 드넓고 쾌적한 실습농장이 잘 갖추어진 충북대학에 근무했었더라면, 그래서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더라면, 국가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연구를 위해 연습림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대학을 굳이 서울의 한복판으로 옮겨 갈 것이 아니라 연습림 근처로 와야 되는 것이 아닐까?

때마침 교과부는 지난 23일 강원대와 충북대, 강릉 원주대, 군산대, 부산교대 등 5개 국립대를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학’으로 선정·발표했다. 물론 우리나라 대학들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대학개혁, 특히 국립대의 구조개혁을 성공시키려면 그 첫걸음을 서울대에서 시작하는 것이 파급효과의 측면에서 그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서울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대학이며, 그래서 세계무대에서 하버드, 옥스퍼드, 베이징대 등과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서울대는 몸집만 부풀려져 운신이 어려운, 일종의 성인병을 앓고 있는 환자 꼴이다. 우선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명문대학들 중에서 서울대만큼 많은 단과대학과 학과, 그리고 전문대학원을 거느린 곳은 없다.

서울대는 마치 온갖 종류의 잡다한 물건을 모두 갖추고 영업을 하는 잡화점 같아서 무려 16개의 단과대학에 특수 전문대학도 9개나 거느린다. 서울대가 상대해야할 스탠포드대학 같은 곳은 7개의 대학만으로 구성되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발 빠르게 움직이며 몇 분야에서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을 보더라도 베이징대는 기본적으로 사회, 정치, 법 분야, 칭화대는 이공계, 그리고 상해의 푸단대는 인문학분야의 최고 대학이다.

또한 미국 주립대학 중 최고로 평가받는 캘리포니아대학 시스템도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된다. 즉 버클리는 기초학문, 데이비스는 농업, 샌디아고는 해양학, 로스앤젤레스는 경영학 및 예술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갖는 체제를 갖추어 학생들이 분야에 따라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다른 대학들을 보더라도, 하버드에는 농대와 공대가 없고, 버클리대에는 의대가 없다. 사실 동부의 명문인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기초학문과 전통적 몇 분야에 치중한다.

이는 어느 한 대학이 싹쓸이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대학 간의 서열화 문제가 크지 않고, 대학의 특성화를 통하여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서울대학에는 기초학문이나 첨단과학뿐만 아니라 농업, 미술, 음악, 심지어는 아동소비자학 분야까지 없는 분야가 없으니, 국립대학의 특성화가 제대로 진척될 리 만무하고, 대학의 줄 세우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세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필요로 하고, 잘 할 수 있고, 그리고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탄 환경에서 좋은 여건을 마련할 수 있는 몇 분야에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해 국민의 자부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려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서울대학의 구조개혁이고, 지리산의 연습림문제도 그러한 맥락에서 궁극적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최협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전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