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딘버러를 다녀온 후 여기저기서 축하인사를 받았다. 광주문화재단이 제작한 ‘자스민 광주’가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결과, 공식 평가기관인 ‘브로드웨이 베이비’로부터 별 다섯 개의 최고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달 동안 ‘자스민 광주’는 지옥과 천당 사이를 오간 셈이다. 지난 7월 2일 광주 초연 후 나타난 과민 반응들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진정성과 씻김음악의 예술성에 주목했던 공연전문가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스민 광주’가 태생적 한계를 갖고 출발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개월이라는 짧은 제작기간, 광주와 서울을 오갈 수밖에 없는 스텝회의, 연합팀으로 구성된 출연진 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연습에 돌입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레퀴엠의 핵심인 광주의 상처를 극복하고 세계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하려는 메시지에 공감한다면 세계와 통할 것이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여기에 확신을 불어 넣어준 사람들이 6월 중순경 취재차 광주를 방문한 스코틀랜드 언론인들이었다.

그들은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는 에딘버러 축제에서 ‘자스민 광주’와 같은 콘텐츠는 매우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던 터이다. 그들의 예단은 그대로 적중했다. 현지 공연평론지 ‘리스트’는 하이라이트로 감동을 전했으며 일간지 ‘헤럴드’와 ‘스콧맨’도 공연사진과 함께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6회째 공연이 끝나자 ‘브로드웨이 베이비’는 “우리 모두에게 인류에 남아있는 영혼의 교감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정말로 진귀한 볼만한 작품이었다”는 리뷰를 발표했다.

에딘버러에서 돌아오는 길에 곽재구 시인의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었다. 시인이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고향 산티니케탄에서 540일을 사는 동안에 만난 사람들과 시간의 향기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지독히도 가난하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도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향기가 가득하다. 시인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생의 1초, 1초들과 따뜻하게 포옹하라고 말한다. 엄혹했던 70년대 말 캠퍼스에서 만났던 시인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시인이 전하는 메시지를 아주 생생하게 성찰할 수 있었다.

시인은 풍부한 서정성과 치열함으로 빛나는 은유의 칼날을 갈고 닦았다. 시와 산문들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의 화제가 되었다. 81년 신춘문예 당선작 ‘사평역에서’를 기점으로 수많은 시집과 산문집, 동화집이 세상에 나오면 나는 애독자가 되어 있었다. 시인은 자신의 말처럼 생의 1초들을 깊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누군들 삶을 무미건조하게 보내고 싶겠는가마는 특히 예술인들의 삶은 치열함이 생명력이다. 유럽 순회공연 중인 정명훈 예술감독의 서울시향도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혼이 담긴 선율로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서울시향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도약하기 위한 가열찬 행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매년 오디션이라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5%의 단원을 솎아내고 있다. 이러한 정명훈의 실험에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치열함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고통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통은 소중하다. 최근 팝핀댄스 오디션에서 우승해 3억 원의 상금을 거머쥔 광주여고 주민정 양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제 자신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연습했다.” 주양은 오디션을 위해 5개월 동안 매일 새벽 3∼4시까지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제 세계 공연예술의 메카인 에딘버러로 가는 길은 열려있다. 2013년에 또 한 번의 에딘버러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까닭이다. 새로운 버전을 준비하는 ‘자스민 광주’가 그때까지 생명력을 이어갈지 아니면 창의적인 소재와 치밀한 공연전략으로 무장한 지역공연단체가 에딘버러행 티켓을 손에 쥘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처절한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죽을 각오로 연습한 자’에게 기회가 올거라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생의 1초, 1초를 진정으로 사랑한 자들이므로.

〈박선정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