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지역에서는 국책사업을 서둘러 달라고 정부를 보채는 데 왜 광주는 스스로 발목을 잡는지 모르겠다는 핀잔을 듣는 것도 이젠 지겹습니다.”

문화중심도시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를 만나 1년 여 동안 옛 도청별관 철거 논란에 발목잡혀 차질을 빚고 있는 국립아시아 문화전당 건립사업에 대해 이같이 푸념했다.

지역 사회의 논란으로 문화전당 건립에 제동이 걸린 것은 이번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문화전당 랜드마크 논란은 전당의 건립시기를 2012년으로 2년 늦췄다. 지난해 6월24일 5·18단체의 농성으로 촉발된 별관철거 논란은 이 시기마저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문화전당 건립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옛 도청 문제해결을 위한 10인 대책위’와의 면담에서 “전당은 원설계 안대로 가되, 시민들이 원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히려 도청별관을 전체적으로 원형 보존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일 수 있겠다”는 입장을 밝혀 이를 시사했다.

정부가 문화전당 건립시기를 확약했지만, 광주 시민들이 별관의 원형보존을 원하고, 건립시기를 문제삼지 않을 경우 문화전당 건립을 굳이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10인 대책위와 5월 단체는 5월의 문과 3분의 1 이상 존치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5월 단체들의 도청별관 보존 주장은 당위론에 가깝다. 그러나 전당 설계자인 우규승씨가 최근 TV공청회 등을 통해 누누이 밝힌 전당의 설계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보자. 그는 “도청 별관이 보존대상이었다면 문화전당을 지금처럼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광주항쟁 유적과 정신을 오롯이 살리기 위해 도청본관, 상무관, 경찰청 본관 등 주요건물을 지상에 두고 문화전당 건물을 지표 아래에 배치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5월 유적, 정신과 무관하게 지상에 대형 건축물을 세우고 싶은 건축가적 야심을 버리고 선택한 이 설계안 때문에 ‘문화전당이 광주의 기념비적인 건물이 될 수 없다’는, 이른 바 랜드마크 논란에 맞서야 했다.

이 설계안이 지역 여론의 뭇매를 맞자 우씨를 적극 지지·엄호하고 나선 단체는 다름 아닌 현재 설계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5월 단체였다.

지금 5월 단체는 그 설계안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설계안의 변경은 광주의 미래 좌표가 될 문화수도 조성사업의 차질을 불러 올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정부의 최종 선택이 남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5월 단체의 용단이다. 물리적인 5월 공간의 보존에서 벗어나 5월의 정신이 시민들의 뇌리에 살아남을 수 있는, 광주의 미래를 위한 희생과 대동의 정신을 요구한다면 무리일까.

/윤영기 정치부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