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들에게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물 걱정하지않고 농사 지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는 유독 가뭄이 길어지면서 물 때문에 어려움을 크게 겪은 탓에, 이 같은 소원이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전남은 경지면적 전국 1위, 농가인구비율 전국 1위의 농도다. 농가인구비율이 높은 지자체로 함평 60%, 무안 58%, 신안 50%, 영광 37% 등이 손꼽혀 물에 시달린 강도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농어촌공사가 이들 4개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7천426억원의 예산을 세워 영산강 4단계사업을 시작한게 지난 2001년이다. 이 사업은 당초 지난해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예산부족으로 내년까지 미뤄진 상태다.

그러나 완공 1년을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 9년여 동안 투입된 예산은 전체의 22%인 1천660억원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6월말 현재 공정률도 21%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공정이라면, 내년 완공은 커녕 향후 30년 이상은 족히 더 기다려야 한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사업기간 동안 연인원 360여만명의 고용창출 효과와 사업이 마무리될 경우 4개 지역에서 얻게되는 연간 740억원대의 농가소득도 기대할 수 없어 지역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이처럼 ‘찔끔 예산’에 밀려 공사가 지지부진한 것을 두고, 농업인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내년부터 물 걱정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기대와 희망이 사라져버렸다는 볼멘소리다.

특히 해당지역 지자체들의 무관심에 대해 성토하는 농업인들의 목소리도 거세지는 추세다. 농어촌공사 영산강사업단 관계자들이 지난 2002년부터 해당 지자체를 쫓아다니면서 정부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며 협조를 요청해왔으나, 지자체마다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어 결국 사업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필자가 확인해본 결과 무안군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함평군 역시 이낙연 국회의원에게 짐을 떠넘겨버린 상태다. 신안군과 영광군은 사업에 대한 기본계획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농어촌공사가 주관한 사업진행 설명회에 해당 자치단체장들은 얼굴조차 내밀지 않아 농업인들의 분노를 산 적도 있다.

기업이나 외자유치만이 지역발전을 위한 최선책은 아니다. 영산강 4단계 사업의 경우 농업·농촌·농업인들을 살리는 생명과도 같은 숙원사업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자체들은 국책사업이라는 핑계만 들어 손을 놓고 있으니 어찌 농업인들의 속이 타들어가지 않겠는가.

해당 자치단체장들이 당장에라도 정부 관련부서를 쫓아다니며 예산을 확보하고 공정을 앞당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상선 목포 주재 차장 ssle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