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도’ 광주와 창조경제
2008년 08월 24일(일) 23:59 가가
지난 주말 강원도에 다녀왔다. 고향을 사랑하는 청년이 땅을 좀 사고 10만 평의 국유지를 임대해 일군 태백시 구와우(九臥牛) 마을의 고원자생식물원은 매우 아름다웠다. 5만여 평의 해바라기꽃밭 사이를, 벌건 적송(赤松)이 들어찬 한적한 숲길을, 구절초·동자꽃 등 40여종의 야생화가 피어있는 꽃밭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허름해도 깨끗하고 맛있는 식당, 중남미와 아시아 지역의 토산품을 파는 검은 아줌마, 노래를 선사하는 폴리네시아 아저씨, 사이사이에 이어지는 다양한 퍼포먼스 등등… .
엉성하게 지어진 갤러리 두 곳에선 ‘할 아텍(할 아트 앤드 테크놀로지의 약자)’ 회원의 판화전과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 곳에 하루 평균 1천500여명이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찾고 있다고 한다. ‘할 아텍’은 “이 곳은 일반인과 지역 주민 등 길 들여지지 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관객으로 하는 열린 공간이고 작가는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작품은 본원적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원 조성과정이 감동적이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노다지 시절이 끝나 탄광촌이 폐허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갔고 이곳 정선군 고한읍이 고향인 주민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며 고민했다. 먹을 것도, 놀 곳도, 볼 것도 없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 앞으로 무얼 먹고 살까 궁리했다. 정선군의 협조를 받아 폐업한 삼척탄좌 본관 4층 건물을 박물관 비슷하게 다듬었다. 잘 나가던 시절의 향수와 목숨을 걸고 일한 광부들의 아픔과 애환을 박물관에 담고 갱도 체험코스도 만들었다. 너덜너덜한 천정과 엉성한 페인트 벽이 오히려 탄광촌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졌다.
동네 영감·할매와 아저씨·아줌마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표를 팔고 관광객을 안내하며 주차장 정리도 맡았다. 해발 1천700m의 숭악한 산골 환경을 거꾸로 활용하여 더위를 피해 야생화를 구경하라는 발상도 놀랍지만 통상 우리 주변에서 관이 축제를 열면 주민들에게 준비비, 교통비, 식권을 주어 ‘당신들의 축제’가 되는데 비해 이 곳에선 ‘우리들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이웃 삼척의 종유동굴 환선굴과 대금굴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용평리조트에서는 제5회 대관령 국제음악제가 열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극장에 들어간 수백명의 관객과 운동장에서 영상중계를 무료 관람한 관광객들을 흐뭇하게 했다. ‘미녀와 야수’ 영상물을 싱크로나이즈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즐거웠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 남미 출신으로 구성된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들의 현악 합주는 감동적이었다. 2박3일의 강원도 여행은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우리 동네는…?’이라는 물음을 갖게 했다.
독일 루르 지역은 석탄과 철강산업의 몰락과 함께 절망의 도시로 전락했었다. 하지만 민과 관이 궁리를 모은 끝에 엠셔강변 17개 도시를 하나로 묶어 재생 프로그램을 실천했다. 오염된 엠셔강을 정화하고 가스탱크는 갤러리와 스킨스쿠버 장으로, 제철소 구조물은 암벽타기 훈련장·콘서트장 등으로, 탄광은 디자인센터로 원모습을 살린 채 재생하여 산업폐기자원을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바꿨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 디트로이트도, 세계경제의 중심 뉴욕도, 영국의 웨일즈도, 일본의 요코하마도 쇠락의 위기에 몰렸다가 살아난 도시들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문화도시’ ‘창조도시’ ‘창조산업’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산업단지를 만들어 기업을 유치하고, 신도시를 개발하여 땅값을 올리고 도시를 발전시킨다는 개발독재시대의 궁리로는 세상을 앞서 가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UN 무역개발위원회는 올 2월 ‘창조산업 리포트 2008’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창조산업은 지적 재산의 재화나 서비스를 창조하고 제조하며 배포하는 순환과정이다. 나아가 민속예술·축제·음악·도서·회화·조각·공연 같은 전통적인 것, 영화·게임·방송·디지털·에니메이션 같은 기술 집약적인 것, 광고나 건축 같은 서비스 중심적인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매년 평균 8.7%씩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사불란·상명하복·질서·통제·일관 공정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표현되는 산업경제의 시대가 지나가고,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자유·자율·창의·융합·통섭의 가치가 우위에 선다는 전망이다.
새로운 창조경제시대에는 산업경제시대에 뒤처져 있던 광주가 앞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문화중심도시, 문화수도에 걸맞은 궁리를 제대로 하느냐, 이름만 걸고 어영부영 넘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앞날이 정해질 것이다.
/정찬용 현대·기아차 인재개발원장
엉성하게 지어진 갤러리 두 곳에선 ‘할 아텍(할 아트 앤드 테크놀로지의 약자)’ 회원의 판화전과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 곳에 하루 평균 1천500여명이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찾고 있다고 한다. ‘할 아텍’은 “이 곳은 일반인과 지역 주민 등 길 들여지지 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관객으로 하는 열린 공간이고 작가는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작품은 본원적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원 조성과정이 감동적이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노다지 시절이 끝나 탄광촌이 폐허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갔고 이곳 정선군 고한읍이 고향인 주민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며 고민했다. 먹을 것도, 놀 곳도, 볼 것도 없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 앞으로 무얼 먹고 살까 궁리했다. 정선군의 협조를 받아 폐업한 삼척탄좌 본관 4층 건물을 박물관 비슷하게 다듬었다. 잘 나가던 시절의 향수와 목숨을 걸고 일한 광부들의 아픔과 애환을 박물관에 담고 갱도 체험코스도 만들었다. 너덜너덜한 천정과 엉성한 페인트 벽이 오히려 탄광촌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졌다.
동네 영감·할매와 아저씨·아줌마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표를 팔고 관광객을 안내하며 주차장 정리도 맡았다. 해발 1천700m의 숭악한 산골 환경을 거꾸로 활용하여 더위를 피해 야생화를 구경하라는 발상도 놀랍지만 통상 우리 주변에서 관이 축제를 열면 주민들에게 준비비, 교통비, 식권을 주어 ‘당신들의 축제’가 되는데 비해 이 곳에선 ‘우리들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이웃 삼척의 종유동굴 환선굴과 대금굴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용평리조트에서는 제5회 대관령 국제음악제가 열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극장에 들어간 수백명의 관객과 운동장에서 영상중계를 무료 관람한 관광객들을 흐뭇하게 했다. ‘미녀와 야수’ 영상물을 싱크로나이즈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즐거웠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 남미 출신으로 구성된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들의 현악 합주는 감동적이었다. 2박3일의 강원도 여행은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우리 동네는…?’이라는 물음을 갖게 했다.
독일 루르 지역은 석탄과 철강산업의 몰락과 함께 절망의 도시로 전락했었다. 하지만 민과 관이 궁리를 모은 끝에 엠셔강변 17개 도시를 하나로 묶어 재생 프로그램을 실천했다. 오염된 엠셔강을 정화하고 가스탱크는 갤러리와 스킨스쿠버 장으로, 제철소 구조물은 암벽타기 훈련장·콘서트장 등으로, 탄광은 디자인센터로 원모습을 살린 채 재생하여 산업폐기자원을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바꿨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 디트로이트도, 세계경제의 중심 뉴욕도, 영국의 웨일즈도, 일본의 요코하마도 쇠락의 위기에 몰렸다가 살아난 도시들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문화도시’ ‘창조도시’ ‘창조산업’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산업단지를 만들어 기업을 유치하고, 신도시를 개발하여 땅값을 올리고 도시를 발전시킨다는 개발독재시대의 궁리로는 세상을 앞서 가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UN 무역개발위원회는 올 2월 ‘창조산업 리포트 2008’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창조산업은 지적 재산의 재화나 서비스를 창조하고 제조하며 배포하는 순환과정이다. 나아가 민속예술·축제·음악·도서·회화·조각·공연 같은 전통적인 것, 영화·게임·방송·디지털·에니메이션 같은 기술 집약적인 것, 광고나 건축 같은 서비스 중심적인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매년 평균 8.7%씩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사불란·상명하복·질서·통제·일관 공정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표현되는 산업경제의 시대가 지나가고,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자유·자율·창의·융합·통섭의 가치가 우위에 선다는 전망이다.
새로운 창조경제시대에는 산업경제시대에 뒤처져 있던 광주가 앞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문화중심도시, 문화수도에 걸맞은 궁리를 제대로 하느냐, 이름만 걸고 어영부영 넘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앞날이 정해질 것이다.
/정찬용 현대·기아차 인재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