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은 참 예측하기 어렵다. 참여정부의 인사수석이 되기 전까지 광주·전남 관광산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필자의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가 될 줄은 몰랐다. 필자가 광주·전남의 관광산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인사수석 시절 광주·전남 발전의 한 축으로서 서남권발전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부터다.
이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때 이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관광레저 전문가들을 만나 보았다. 60, 70년대 국토개발의 기본설계를 했던 분, 아시아지역에서 대규모 리조트와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만들고 있는 사람, 심지어 한때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국내 레저산업에 돌풍을 일으켰다가 불운을 겪은 분의 생각도 들어보았다.
또 관광레저 리조트 거점개발의 세계적 대표격인 프랑스 랑독루시용을 비롯해 전세계의 웬만한 성공사례 지역은 거의 둘러본 듯하다. 그때마다 세계적인 도시건축가와 관광레저 전문가들도 찾아가 보곤 했다.
이들이 내게 준 확신은 광주·전남은 세계적 관광레저지역이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광주·전남의 자연과 문화라는 두 자원이 모두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를 돌며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 풍경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 사진가 베르트랑 얀은 내게 광주·전남의 남해안은 자기가 본 해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달리 현실은 어렵기만 하다. 무엇보다 광주·전남의 관광 인프라는 초보단계다. 전세계는 놔두더라도 동북아시아에서도 광주·전남은 아직 무명 선수다. 올해가 광주·전남방문의 해이지만 지자체들이 장기적이면서도 획기적인 관광산업발전 청사진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광주ㆍ전남의 관광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7천억원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시도 중 경남, 강원 다음으로 세 번째이다. 현재의 열악한 관광 인프라를 고려해본다면 광주·전남 관광산업이 가진 잠재력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게 하는 성적이다.
그렇다면 이 잠재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이글을 신안군 자은도에서 쓰고 있다. 짧은 휴가지만, 내가 자은도를 휴가지로 선택한 데는 까닭이 있다. 자은도에는 섬 하나에 해수욕장이 무려 9개나 있는데 이런 곳이 또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 하나하나가 정말 절경이다. 압해대교의 개통 덕에 배로 25분이면 간다.
사실 광주·전남 곳곳이 이런 숨은 보석들이다. 나는 광주·전남 관광레저산업의 미래는 이 보석들을 잘 꿰어주는 데 있다고 본다. 그러자면 몇 개의 권역별로 세계적 관광레저 리조트들을 거점 개발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관광레저의 흐름이 단순한 관광지 구경에서 휴양과 레저로 바뀌고 있다. 드골대통령의 결단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궁벽한 어촌마을에서 출발한 랑독루시용 관광레저 리조트 벨트는 거점 개발을 통해 관광불모지를 연 1천만 관광레저도시로 만든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관광벨트를 만든다면 동북아 관광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흔히 누가 이곳에 투자하겠느냐고 말한다. 당장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미 계획이 서 있거나 실행중인 서남권종합발전계획 속의 관광레저도시, 여수지역의 관광레저단지 등을 전세계 관광레저 트렌드에 맞는 수준의 큰 그림을 그려서 잘 추진하면 투자자는 반드시 모여들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또 해야겠다. 경치 좋은 곳마다 모텔과 횟집만 들어서는 난개발에 둔감하거나 트렌드 변화에 오불관언 하는 자기고집의 리더십으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관광레저 인구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다. 투자유치 하나만도 버거운데, 우리는 무엇을 하더라도 이렇게 할 일이 여러 가지다.
가난한 동네의 숙명이지만 ‘아껴놓은 땅’을 허투루 손대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광주·전남을 동아시아의 관광레저 중심지로 만들 담대한 기획과 리더십이다.
/정찬용 현대·기아차 인재개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