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戊子年) 새해다. 벌써 열 나흘째를 맞지만 새벽의 공기처럼 새로운 기운을 느끼고 싶다. 올해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1987년 민주화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또 다른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대선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두 들었을 것이다. 재래시장이나 길거리 유세에서 국민이 원했던 것은 큰 행복이 아니라 그저 작은 행복이었다. ‘ 큰 행복, 작은 행복’이라 했지만 실상 행복을 측정할 방법은 없다. 당선인 한 사람이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는 4월에는 총선이 치러진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가끔 찾는다. 의사당 정문 쪽에는 빨간색 카펫이 깔려 있다. 정문 쪽 카펫을 밟게 되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세미나 때문에 온 것이라 뒤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한다.
택시를 타고 본회의 의사당 정문에서 내리면서 여러 사람의 눈총을 받은 적도 있다. 국회 경위가 다가와서는 방문 목적을 묻고선 뒤로 돌아가라고 한다. 본회의 의사당은 또 그렇다 치자. 국회 의사당 좌측에는 의원회관, 우측에는 도서관이 있다. 의원회관 직원들은 자부심이 매우 강한 것 같다. 정문 출입이 안 되는 것쯤은 알아야지 하는 눈총을 주기 일쑤다.
미국 상·하원 청문회장이나, 본회의장을 들어가려면 금속 탐지기를 거쳐 신분증만 제시하면 된다. 청문회장은 자리가 찰 때까지 모두에게 개방된다. 관심이 높은 청문회는 자리를 맡아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까지 있다. 바쁜 사람 대신 줄을 서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국회에는 불필요한 규제가 너무 많다. 의사당 방청도 사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 규제가 많으면 기득권이 생기고, 권위적이게 된다. 선거 때면 자신을 뽑아 달라고 90도로 허리를 굽힌 후보들도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누구를 위한 국회여야 하나? 또 속아야 하나?
택시를 타면, 기사들의 넋두리를 듣게 된다. 1년 미만의 신입기사들은 교통법규를 위반해가면서 운전해도 하루에 입금을 채우고 2∼3만원 벌기가 힘들다고 한다. 10년 차 정도는 돼야 여유가 좀 있다는 것이다. 지방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백번 양보해서 이들의 교통법규 위반은 살기 위한 방편(?)이라고 치자. 하지만 부유층이나 타고 다닐법한 고급 승용차의 교통법규 위반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우리 국민들은 ‘빨리빨리’의 마법에 걸린 것 같다. 자기 차로를 따라 주행하면 될 것인데도, 옆 차로의 차가 좀 작다 싶으면 진행등도 켜지 않고 끼어든다. 교차로의 꼬리 물기는 예사다. 파란불에 차들이 교차로에 엉켜 있어 정지선에서 기다리면 뒤에서 난리가 난다. “가지 않고 뭐 하느냐”는 식이다. 남을 탓하지 자신을 뒤돌아 보지 않는다. 결국, 우리 모두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과 다를 바 없다.
내 탓보다 네 탓을 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다. 자신의 기분이 좋으려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이 잘 되기 바란다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내 아이의 친구가 불행하지 않기를, 내 남편의 거래처 사장님들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게 우선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선량한 마음들이 생길까? 행복한 나라는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면 된다. 행복은 선순환이다. 고대 조로아스터교의 ‘눈에는 눈, 칼에는 칼’ 식의 순환은 악순환이다. 선순환의 궤적은 자신의 집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할 뿐,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타게 된다. 우리의 본성은 공격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이지 않을까?
새조개 철이라 지난 토요일 태안 안면도에 다녀왔다. 400만 평이 넘는 서산간척지를 지나 도착한 곳은 기름 유출사고의 여파로 유령마을처럼 한산했다. 식당 아주머니는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들이 제법 붐비기 시작했다.
이내 식당 한 모퉁이에서 들려온 말에 귀가 쫑긋 섰다. “아마 새조개도 중국산일 거야 그지?!”. 아뿔싸! 행복한 나라에 있는 ‘믿음’이 없구나!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