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에 나오는 마귀할멈은 백설공주를 꾀어 독이 든 사과를 먹게 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고 믿으려 한다. 신데렐라 역시 계모의 철저한 미움 속에 생활하다가 예쁜 유리구두를 신고 파티에 나갔다가 왕자님을 만난다. 콩쥐팥쥐의 계모도 마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녀와 관련된 이야기는 계모가 마녀로 비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녀는 대개 얼굴이 얄궂게 생겼다. 서양의 마녀는 메부리 코에 검은색 꼬갈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 동심의 세계에서 볼 때 마녀는 부정적이고 나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주식시장에 ‘세 마녀의 날(triple witching days)’이 있다. 선물, 옵션 계약이 현물 및 선물시장에서 동시에 만기가 되는 날이다. 글로벌경제에도 악재가 산적해 있다. 세 마녀로 비유하면 첫째가 유가, 곡물, 구리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둘째는 달러화의 약세 추세다. 세 번째 마녀는 잠시 뒤에 다루도록 하자.
국내외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이미 1년 전부터 이같은 상황을 예측했다. 환율은 ‘8자’를 그릴 것이고, 유가는 비록 배럴 당 100달러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70달러를 넘어설 것이며, 곡물가격도 미 기상청(NOAA)의 가뭄 전망에 따라 크게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는 ‘시장에서의 순환’을 의미한다. 생산, 고용, 임금, 소득, 소비 등 모든 경제활동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은 것이다. 이같은 톱니바퀴가 곧 경제시스템이다. 어느 하나가 삐걱거리면 빨간 불이 들어와 작동을 멈추게 된다. 문제를 일으킨 부문을 수리(구조조정)하지 않으면 다시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첫 번째 마녀인 고유가, 고원자재 가격, 높은 곡물가격은 일반 소비물가의 앙등을 초래한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들의 씀씀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시중자금이 많이 풀려 있으면 세금이나 금리를 올려 통화긴축을 유도한다.
하지만 물가를 잡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도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로 보고 있다. 필자 생각엔 적어도 3.5%가 되지 않을까 싶다.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물가는 1.7%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유가가 배럴 당 평균 25달러 정도였으니, 소비자물가는 4% 이상 올랐어야 옳다. 그런데도 왜 2%대 중반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을 마치 ‘인플레이션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왔다. 이런 중국도 올해 소비자물가가 연초 3%에서 10월 현재 6%로 상승하고 있다.
두 번째 마녀, 달러화 약세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이후 가속도가 붙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부실 여파가 글로벌 경제에 전이되는 데는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컨츄리 와이드 등 미국의 주요 모기지 대출업체, BNP 파리바 프랑스 은행, 노던록 영국은행 등 글로벌 주요국 상업 및 투자은행의 잇따른 유동성 경색으로 미국을 위시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급 유동성 공급을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이는 곧 달러화 공급의 증가, 즉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유발했다.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금값이 뛴다. 외환보유 자산이 각각 4.5조와 3.5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OPEC 등 석유 생산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외화자산 포트폴리오 중 미 달러화보다 유로달러를 선호하면, 미 달러화는 더 떨어질 것이다. 달러화 가치 하락은 세계경제의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기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미국의 계속되는 요구에 끄떡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도전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세번째 마녀는 과연 누구일까. 미국이 ‘잘 나가는’ 중국에게 ‘독이 든 사과’를 먹이려는 마녀일까? 아니면 끝까지 위안화를 절상하지 않고 버티면서, 지금까지 빨아 들였던 인플레이션을 모두 밖으로 내뿜어 버리는 중국일까?
진주만 공습을 다룬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야마모토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중국은 세계를 경영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