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가장 많이 듣고 많이 하는 말이 ‘민족문화’, ‘전통문화’, ‘문화도시’, ‘문화시민’ 등 ‘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들이다. 누군가는 “문화는 생존전략”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문화’는 그만큼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수교 15주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중국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폭넓은 이해를 위한 작업의 하나로 숫자 속에 담겨 있는 중국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숫자에는 민족마다 독특한 문화가 함축돼 있다. 한민족은 홀수를 선호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짝수를 선호하는 것 등이다.
중국에서 지존을 상징하는 기본숫자는 ’1, 5, 9’다. 1은 ‘一人, 天子也’(‘書呂刑傳’)에서와 같이 ‘제왕’을 뜻하며 5와 9도 같은 의미다. 가장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숫자는 ‘3, 7, 8’이다. 3은 불교의 ‘삼승(三乘)’, 도교의 ‘삼신산(三神山)’ 등에서 볼 수 있듯 성스러운 표현에 쓰인다. 7은 불교에서 석가가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깨달음의 외침을 발한 데서 비롯됐다. 8의 성스러움은 ‘팔상(八相))’, ‘팔선(八仙)’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길함을 나타내는 숫자는 ‘5, 6, 8, 9’다. 5는 홀수로 양(陽)에 해당하는 숫자인데 5가 겹치는 단오는 태양이 가장 순수하고 그 빛이 왕성하기에 천중가절(天中佳節)이라고도 부른다. 9는 최대의 양수이다. 9가 겹치는 음력 9월9일은 양이 가장 넘치는 날로 ‘중구(重九)’ 또는 ‘중양(重陽)’이라고 한다.
6은 중국에서 그 음이 흐를 류(流)와 비슷하기에 모든 일이 아주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을 상징한다. 8은 많은 재물을 얻어 번창해진다는 뜻을 가진 ‘발(發)’과 음이 비슷해 가장 선호하는 숫자다.
모든 사물의 시작을 상징하는 숫자는 ‘1, 3’이다. 1은 만물의 시작, 즉 본원을 의미한다. 3은 세상 만물의 바탕이 되는 기본수로 쓰인다. 음양이 조화되면서 화합을 상징하는 숫자는 ‘2, 6, 9’다. 2는 서로 대립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두 사물을 가리킨다.
기쁨을 표현할 때도 ‘희(喜)’를 겹쳐 ‘囍(쌍희)’로 쓴다. 선물은 언제나 짝수로 하는 선물문화, 손님을 초청할 때는 물론 집안 식구끼리의 식사에서도 요리는 짝수로 하는 음식문화가 생겼다. 6과 9도 화합을 상징한다. 양수인 9는 음수인 6과 함께 쓰이면서 음양의 화합에 의한 만물생성의 도를 뜻한다.
가장 불길하다고 생각하여 기피하는 숫자는 ‘4, 7’이다. ‘사(四)’는 그 음이 죽을 ‘사(死)’와 비슷하다. 선물이나 축의금을 보낼 때는 4가 비록 짝수이지만 피한다. 7도 죽음을 상징한다. 중국어 ‘칠칠(七七)’이란 말은 한국과는 달리 사람이 죽은 후 49일이 될 때까지 7일마다 한 번씩, 일곱 번 제를 지내는 것을 뜻한다.
기본숫자는 서로 어울려 보다 큰 수를 표시하며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1과 8이 어울린 18은 그 음이 ‘요발(要發)’과 비슷하기에 ‘돈을 벌겠다’, ‘부자가 되겠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58은 ‘오발(吾發)’의 음과 비슷하고 ‘吾’는 ‘나’를 뜻하므로 ‘내가 돈을 벌겠다’, ‘내가 부자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98도 음이 ‘구발(久發)’과 비슷해 ‘계속 돈을 벌다’의 의미다. 따라서 중국 사람들은 18, 58, 98 등의 숫자를 매우 선호한다. 반면 동일한 9와 8이 합쳐진 89는 상당히 꺼리는 숫자이다. 89의 음이 ‘벌주(罰酒)’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적 심리는 물건을 사고 팔 때 여실히 드러난다. 물건 값에 18, 58, 98이 들어가면 그 질이야 어떻든 즐겨 사지만 89와 같은 숫자가 있으면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숫자에는 이렇듯 다양한 문화가 담겨 있다. 한국 사람들이 숫자 속의 중국문화를 이해하면 중국과의 교류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문화를 알면 ‘人民幣(중국의 화폐)’가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강은국 중국 푸단대 교수·전남대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