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프로에 ‘결정, 맛 대 맛’, ‘당신의 결정’ 등 ‘결정’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쪽 주먹을 불끈 쥐며 “그래, 결정했어” 하는 코미디 프로가 한 때 유행하기도 했다.
결정은 어렵다. 그래서 남이 해주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카리스마를 흉내 낸다. 그러나 카리스마들끼리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충돌이 생기고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결단력이 강한 명성황후와 그렇지 못했던 고종은 부부로서는 합리적 관계였을지 모른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단명했지만 자식도 많았다. 그러나 명성황후와 대원군간에는 서슬이 시퍼러었다. 이들의 카리스마와 결단력 대결은 조선말 근대화의 싸움으로 확장된다.
마음을 결정하는 게 결심이다.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 팻 맥라건의 글이다. 결심으로만 끝나면 영원히 실패자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결심을 한 후 실천을 한다. 그래서 업적을 만들어 내고 신뢰를 쌓아간다. 그것이 결단이다.
결심은 누구나 하지만 결단은 리더들만 한다. 도요타를 세계적 자동차회사로 만든 도요타 에이지의 결단은 수요지향적 생산을 위한 노동조직의 혁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상놀이와 상상놀이를 즐겼던 영국 소녀가 있었다. 치핑 소드베리, 아주 작은 마을의 가난한 집 출신이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비서로 취직하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직장을 그만 두고 만다. 그녀는 빵 살 돈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어릴 때부터 좋아한 글쓰기에 매달린다. 그녀의 결단이었다.
조앤 캐슬링 롤링의 결단은 무모한 결정이 아니라 준비된 결단이었다. 결단에는 노력과 인내와 준비가 필요하다. 그녀는 기차와 카페, 시장 등 어디서든 글을 썼다. 영국의 어느 출판사도 사주지 않는 원고를 끊임없이 쓰고 고쳤다. 미국에 보낸 원고가 출판되어 인기를 얻자 영국에서 뒤늦게 출판돼 우수도서에 선정됐다. 그녀는 현재 영국의 최고 부자다.
200여 나라에서 ‘해리포터’가 출판된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는 100억 달러(약 9조3천억원)를 벌어들여 최고의 프랜차이즈 영화가 되었다. 44억 달러를 기록한 ‘007 제임스 본드’ 22편 시리즈를 눌렀다. 그녀의 책을 출판한 우리나라 출판사도 수백억을 벌었다는 소문이다.
작품 속 해리 포터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연약하지만 마법학교의 영웅이 된다. 무조건적 결단이 아니라 지혜로운 판단과 용기를 동반한 결단을 통해서다. 결단은 성공을 하게 되고. 그때마다 지지자가 늘어간다. 결단에도 갈고 닦아온 마법의 기술을 발휘한 것이다.
해리 포터는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아주 조심스럽다. 현장을 몇 번씩 관찰하고, 실험을 해보고 친구와 스승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단하면 용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다른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피할 때 그는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
마침내 돈과, 힘과, 권력이 그의 지혜로운 용기에 무릎을 꿇게 된다. 해리 포터 신드롬은 그냥 운 좋게 생긴 것이 아니다. 한낱 판타지 동화인 작품이 세계적인 작품이 되기까지는 작가의 결단이 있었고, 작품 속 주인공의 결단이 있었다.
결단에는 버리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으면 결심을 실천할 수 없다. 한자어 결단(決斷)은 ‘끊고 자른다’는 뜻이다. 영어의 어원 ‘de+cide’도 ‘둘로 자르다’는 의미다.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결단을 내려 영원한 효녀가 됐고, 신정아는 도덕적 결단력 결핍으로 한국의 가을을 흔든다. 좋은 결단을 하는 사람들은 잘 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소문대로라면 변양균은 사랑의 유혹을 잘라내는 결단력을 놓쳐 모든 것을 잃고 있다.
국화가 지면 한 해가 저문다는 만추의 꽃향기 홀로 짙어가는 요즈음, 대선을 앞두고 누구누구 후보의 결단이라는 보도를 자주 보게 된다. 성급한 결단은 없는지, 준비 철저한 결단인지, 옳은 결단인지, 나라 발전에 보탬이 되는 지혜로운 결단인지 살펴볼 일이다. 어떤 사람의 결단력은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 결단을 해야 할 사람이 안 하는 것도 문제다. 때를 놓치지 않는 결단도 중요하겠다.
김유선〈(사)여성문제연구회장·장안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