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생활할 때다. 꽃과 나무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작은 공간만 있어도 꽃이나 나무를 사다 심었다. 어느 해 가을 초엽, 뜰에 코스모스 씨를 심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싹이 트더니 자라기 시작했다. 1m 쯤 컸을까, 꽃망울이 맺히며 갈래 꽃잎을 벌린다. 보라색, 분홍색, 흰색 코스모스가 가녀리게 떨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다가도, 다양한 색조와 흐드러진 모습에 홀딱 빠지고 만다.
하루는 차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꽃 이름을 물었다. 코스모스라고 대답하자 참 예쁜 꽃이라고 한다. 주인을 찾아 묻고 싶었는데 이제야 알게 돼 기쁘다며 꽃씨를 사서 심겠다고 했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이라 한다. 모습과 잘 어울린다.
사람이 사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표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기쁘면 웃고 슬프면 웃는다. 영화를 보면 험상궂게 생긴 사람은 미국이나 한국을 가리지 않고 악역을 도맡는다. 생김새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일단은 잘 나고 볼 일이다.
하지만 예외라는 것이 있다. ‘잘 생긴 사람은 인물값을 한다’고 하지만 고전에 나오는 ‘박씨 부인전’에서 박씨 부인은 절색 미인은 아니었지만 한 집안을 일으키는 현모양처로 묘사된다. 생긴 대로 산다면, 인간은 유전학적으로 지구상에서 오래 전에 도태되었을 지 모른다. 생존법칙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물론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을 두고 이전투구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가 생각난다. 1956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안소니 퀸과 지나 로라 브리짓 주연의 영화도 있다. 최근엔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반신불구’였던 꽈지모도, 노틀담성당의 부주교이면서 꽈지모도를 몰래 감춰준 클로드 프롤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장교를 사랑한 16살의 집시 에스메랄다. 결국 프롤로가 놓아 주지 않았던 사랑에 대한 질투는 에스메랄다로 하여금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게 만들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인연의 굴레가 되풀이 되면서, 다시 광인절(狂人節) 군인들의 놀림에서 구출해준 꽈지모도에 의해 성당 안으로 피신하게 된다.
힘없는 한 인간의 사랑이 종교라는 피난처에서 안식을 찾는 듯했지만 종교도 완벽한 피난처는 아닌 듯하다. 노틀담성당의 부주교가 프롤로이기 때문이다. 결국 프롤로는 꽈지모도에 의해 죽음을 맞고, 에스메랄다는 싸움의 와중에서 죽는다. 꽈지모도도 에스메랄다를 연모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심을 털어 놓지 못하고 에스메랄다 옆에 누워 죽어간다.
배우를 뽑는 오디션을 가정하면 프롤로가 가장 악당스럽고, 에스메랄다와 장교 페뷔스가 가장 잘 생겼을 것이다. 꽈지모도는 이 두 종류의 인간상을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노틀담의 꼽추를 다음과 같이 각색해 보자. 에스메랄다가 페뷔스보다는 프롤로에게 마음을 주었다면, 페뷔스가 에스메랄다의 칼에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성당의 부주교면 카톨릭이 국교인 프랑스에서 부귀영화는 다 누렸을 법하다. 당시 교회는 신성불가침에다 특권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던 곳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왜 프롤로에게 모든 마음을 주지 못했을까. 못한 것일까, 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 16살의 에스메랄다는 거짓말을 못하는 모양이다.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는 들통 나느니, 언젠가는 다 잃어버릴 권세와 부에 집착하느니,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옳다. 사랑을 비극으로 만든 빅토르 위고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셰익스피어는 작가다.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그들의 원작 속에 몇 개의 복선으로 숨어 있는 것 같다.
먹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오더니, 굵은 빗줄기를 뿌린다. 보라색 코스모스 갈래 잎이 흔들거린다. 지금도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그 어떤 두 사람에게 소설 ‘노틀담의 꼽추’를 다시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곽수종<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