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납치된 한국인 인질 19명 전원이 2일 귀국함으로써 아프간 인질사태가 45일만에 막을 내렸다. 피랍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필자가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복합적이다.
사태를 보는 관점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시선, 남성의 시선, 특정 종교인 기독교도의 시선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피랍사태에 대한 언론보도가 만들어 낸 이미지 중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이슬람의 율법은 여성을 해치지 않는다 혹은 여성을 존중한다는 관념이다. 실제로 과격 이슬람교도들인 탈레반 무장세력은 세계의 이목이 자신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목사를 포함한 남성 인질 2명을 살해하면서도 건강문제가 심각한 여성 인질 2명을 먼저 돌려보내는 조치를 취해 비록 무장단체이지만 ‘여성을 존중하는 신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에는 아직까지 문화적인 전통으로 여성의 신체와 성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가 무시된 채 음핵절개의 관습이 존재하고 있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국민 혹은 시민이 될 수 없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열등한 성, 제2의 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이 소유하고 보호해야할 대상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가장 인상 깊게 보았다는 이슬람 영화,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오사마’에는 탈레반 집권시절 이슬람 사회의 여성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12살짜리 아프간 소녀가 탈레반 정권 아래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고통을 잘 보여준다.
병원에서 일하던 주인공의 어머니는 일자리를 잃고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딸인 마리나에게 남장을 시켜주고 오사마라는 남자 이름을 붙여준다. 남장을 한 마리나(오사마)는 구걸을 해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지만 남장을 한 탓으로 군사훈련에 징집되기에 이른다.
마리나는 군대 교관에게 여자라는 사실이 탄로돼 결국 감방에 수감된다. 이 영화는 감옥에 갇힌 채 창살 너머 또 다른 거대한 감옥인 아프간과 이슬람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의 지위가 잘 나타나 있다.
영화 속의 얘기가 아니라 실제 탈레반 시절 아프간에서 여성들이 글을 배우고 문학을 공부하거나 남장을 하는 것은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중죄에 해당됐다. 탈레반 정권은 남자와 동행하지 않는 한 여성들에게 외출조차 금한다.
그런데 2001년 미군이 아프간을 점령했다. 그 이후 제정된 아프간의 새 헌법은 남녀평등의 정신을 담고 있다.
새 헌법에 의해 선거가 실시되었고 의회가 구성돼 지난번 광주세계여성평화 포럼에 다녀간 말라라이 조야 같은 여성의원들이 최초로 탄생하게 되었다. 어떻든 보편적인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군이 아프간 남성들로부터 억압받고 있던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켜 준 셈이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서 가장 고통받는 민간인 집단이 여성과 아동이었음을 지켜보면서도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이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묵인하고 이론적으로 용인하는 공모자가 되고 말았다.
페미니스트의 상당수는 이슬람 전통과 탈레반정권 시절보다 지금의 아프간 정부가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켰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몇몇의 1세계의 보수적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미국의 아프간 침략을 해방군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간의 새 헌법은 남녀평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여성의 인권상황은 과거에 비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아프간 남성들은 여전히 여성을 소유하고 보호할 권리, 필요할 경우 아내를 소유하고 때릴 권리를 누리고 있다. 지금의 아프간 현실은 진정한 평등이나 평화가 외세를 등에 업고서는 제대로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탈레반의 여성존중도 열등한 자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평등한 권리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에 대한 차별을 교묘히 은폐하려는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안진〈광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