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화‘화려한 휴가’가 흥행에 대성공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가족들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영화를 본 뒤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필자는 이 영화에 일부 감동적인 장면들이 빠져 아쉽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프랑스 칼레의 시민대표들이 영국군에 완전 포위되어 고립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적군 사령부를 찾은 희생적 모습이 로뎅의 작품으로 제작되었는데 같은 목적으로 계엄군 사령부를 찾은 광주시민 대표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사회적 소재를 무겁지 않게 처리했고 또 흥행적인 요소도 넣어 지루하지 않게 구성했다는 평가였다. 메시지 전달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획일적인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는 관객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어디까지나 상업적 컨텐츠일뿐 관객을 교육시키는 매체가 아니라는 견해였다.
일반 관객들도 이런 견해에 동조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5·18항쟁을 소재로 만든 영화는 이에 맞게 특별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 제작과정에서 스스로 해야 할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이 어느 날 필자에게 기획시대 유인택 사장을 소개하였고 아마 그런 연유로 유 사장으로부터 시나리오를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필자는 5·18재단 등의 검토를 거쳐 별다른 의견은 없으나 소중한 소재이니 영화를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광주시청에 근무할 때도 광주항쟁을 영화화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공모하자는 아이디어를 논의한 바 있어 잘못될 경우 소재의 참신성만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며칠 전 어느 문화계 모임에서 대표 한 분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준 가장 확실한 메시지는 “광주시민은 폭도가 아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 분은 영화제작자도 이런 메시지 정도로 광주시민들이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럼 우리에게 영화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까? 자유, 평등, 인류애가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이듯이 이 영화에서 내세우고 싶은 광주의 정신 또는 가치는 무엇인가?
지난 2005년 가을 노벨평화상 수상자회의를 유치하기 위해 박광태 광주시장과 함께 로마를 방문하여 고로바초프 등을 만나 강조했던 광주정신은 비폭력, 평화, 용서와 화해였다. 귀국 후 언론인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당시 실제로 총격전이 발생했는데도 비폭력 항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또 어느 시민단체 대표를 만나 용서는 피해자만 할 수 있는 특권이므로 우리가 먼저 용서를 하고 화해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실정이므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5·18항쟁의 짧은 시민자치공동체 기간동안 공권력 부재의 상태에서도 단 한 건의 폭력과 절도가 없었고 시민 스스로 나눔을 실천하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2년 전 로마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가장 강조한 광주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들어 비폭력과 평화가 5·18정신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비폭력은 독재자들에게 저항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저항하는 구성원간 즉 광주의 경우 시민간에 폭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광주정신을 5·18항쟁 기간의 현상으로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광주항쟁이 몇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시민 모두가 함께 쟁취한 공유물이듯이 광주정신도 5·18항쟁 당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연속적인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시민자치공동체의 전례가 된 파리꼬뮌 등과는 달리 5·18항쟁 당시 광주에서는 시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새로운 실험을 했고 이를 통해 대동사회를 구현하였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남아 살고 있는 사람들은 평화와 인권의 실천, 관용과 화해의 실천, 협력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서 광주정신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병화 조선대교수·전 광주시 정무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