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농성 해산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실현될 날은 언제일까, 또 국가권력은 중립을 지키기 힘든 것일까 등의 착잡한 심정이 든다.
이랜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해결은 당사자들의 노동권 보장 차원을 넘어 한국사회가 평등한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데 있어 핵심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경제활동 여성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빈곤인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많은 여성들이 점점 더 노동시장의 주변으로,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월수입 80만원 정도의 일자리를 잡기 위해 회사가 고용한 경비업체 ‘용역깡패’들의 폭력에 내동댕이쳐지면서도 기를 쓰며 일어서고, 농성현장에서 전투경찰에게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힘없는 여성들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대형마트에서 쇼핑할 때 쉽게 만나는 계산대의 계산원들이다.
한국사회는 지난해 드디어 여성경제활동인구 50%를 넘어섰다.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70∼80%에 이르는 OECD 국가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낮은 수준이지만 산업화 초기인 1960년 26.8%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이다. 그러나 여성경제활동인구 중 70%가 비정규직이다. 물론 계약직, 단시간,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 고용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고용이 문제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는 일이 정규직과 별 차이가 없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차별 철폐가 이뤄지지 않으면 여성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인권을 누리기 힘들다. 또 성 평등사회의 실현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
이랜드 사태의 원인은 그룹의 산하 사업장인 뉴코아, 이랜드, 홈에버 등의 경영행태에 있다. 사태는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비정규직법안의 2년 이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무를 피하기 위해 전체 계약직 350여명 중 330여명을 해고한 데서 비롯됐다. 이랜드 그룹은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내쫓았다. 1주일 미만의 초단기 계약, ‘○’개월 백지 계약서 요구, 계약서의 근로계약기간 변조 등 편법이 난무했다.
또, 용역으로 전환시킨 계산원 업무는 위장도급의 의혹을 낳고 있다. 이 기업은 노동자의 건강을 이유로 제한하고 있는 야간근무자에게 고객이 적다는 이유로 급여를 더 적게 주거나 임신한 여성에게 매일 연장근무를 강요하는 등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보호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위법상태를 방치하여 사태를 키워온 정부의 책임도 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없애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위장도급과 외주용역, 불법파견을 부추기는 현행 비정규직법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제대로 된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현행법 하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노사갈등을 정부가 중립적인 조정자의 입장에서 해결하는 일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불가피할 때 물리력을 동원해야 정당성을 갖는다. 그래서 ‘공권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정부가 노사협상 결렬 이후 이랜드 노조의 농성장에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킨 것은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한 행위는 비정규직법안을 사용자로 하여금 입법취지에 맞게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의 악용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가 비정규직법을 준수하지 않고 편법으로 피해가는 비도덕적인 기업의 편에 선다면 여성들과 시민단체들, 양심 있는 학자들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랜드 사태는 30여년 전 권위주의 정권 시절, YH 여성노동자들이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해졌던 국가폭력의 광포함, 구사대의 폭력을 연상하게 한다.
국가가 노사의 중재자의 역할을 방기하면 시민들은 최소한의 경영윤리조차 저버린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이라도 벌일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 법안을 준수하기는커녕 근로기준법까지 위반하는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은 기업의 법위반에 동조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 안진〈광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