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일본인 교수로부터 요즘 일본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고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들었다. 그는 일본인 특히 젊은 일본인들이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한국인들에 대해 점차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첫째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다. 한류는 이제 특정 연예인 몇 사람에 대한 인기를 넘어 한국인들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놀라운 열정이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온 국민의 뜨거운 성원 속에 4강 신화를 창조했다. 그 과정에서 붉은 악마를 비롯한 국민들의 뜨거운 거리응원은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특히 공동개최국이면서도 이러한 멋진 모습을 지켜만 보아야 했던 이웃 일본 젊은이들에게 많은 부러움을 느끼도록 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경계심으로 이웃인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지역 패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을 하고 있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선 한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을 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 이유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우리의 반일감정도 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한일관계에서 양국 간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지면은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반일 기사로 넘쳤다. 그러면서 우리는 민족주의를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는 매우 정당한 가치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민족주의가 배타적으로 흐르기 쉽고 특히 정치인들이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을 들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을 비판해 관계가 불편했는데 한 프랑스계 미국 기업인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프랑스가 비판한 것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부시 행정부이지 미국, 특히 미국인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인들은 프랑스의 시락 정부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포도주 불매운동을 벌였고, 나아가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민주국가의 보편적 가치의 표상인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훼손하려는 시도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한일관계에서 비판과 비난의 대상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추종자, 역사를 왜곡하는 일부 국수주의적 학자, 영토문제를 계속 야기하는 일부 선동가들과 선량한 일반 시민, 양심적인 일부 지식인들을 구분해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듯이 우리 내부의 지역감정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개연성이 있다. 특히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누군가 지역감정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때 우리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역차별과 관련해서도 과거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를 악용한 세력들은 비판을 받아야 당연하지만 과거에 묶여 작은 나라가 또 지역별로 찢어져 서로 불화하고 반목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필자는 앞으로 광주가 동아시아지역 협력과 지역감정 해소에 기여하기 위해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동안 광주는 민주주의 및 인권 신장의 발신자 역할을 수행하며 아시아 인권·평화운동가들에게 많은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광주의 시민단체들은 국제인권회의를 개최하고 ‘광주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사람에게 광주인권상을 수여함으로써 세계 인권신장에 앞장서 왔다.
2010년 5월 완공 목표로 건설 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은 미래의 평화로운 아시아를 위한 상호 문화교류, 창조성, 다문화 연구활동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광주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시아 국가간의 평화네트워크 구축과 지역연대감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광주에서 이웃 국가와 이웃 지역에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화〈조선대 경제학과 교수·전 광주시 정무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