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의 대선 예비후보가 넘쳐나고 있다. 여권이 사분오열되면서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더니 저마다 ‘우후죽순’ 격으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출마선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곤혹스러운 것은 그뿐만 아니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빅3’ 중 한 명이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반(反) 한나라당 진영 대선예비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국민중심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복당한 이인제 의원도 민주당원을 상대로 한 당내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손 전 지사와 이인제 의원은 닮은꼴 정치인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치를 시작했고 YS가 이끌던 당에서 당의 ‘입’이라고 할 수 있는 대변인으로 활약한 공통점이 있다. 또 국회의원을 거쳐 YS정부에서 각각 보건복지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뒤 경기도지사를 지낸 점도 비슷하다.
손 전 지사의 범여권 합류 선언으로 공통점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원래 몸담고 있던 당의 대권후보 경쟁에 나섰다가 어려움에 처하자 탈당해 대선에 출마하거나 대선 후보가 되려고 하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된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 의원의 행보다. 지난 1987년 통일민주당 중앙상무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 의원은 국회의원과 노동부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지냈다. 199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3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러한 이 의원의 행보는 ‘이인제 학습효과’, ‘이인제 선거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또 국민회의와 국민신당 등 9차례의 잦은 당적 변경으로 ‘철새 정치인’의 상징처럼 됐다.
손 전 지사의 행적도 도마에 올랐다. 손 전 지사는 민자당 대변인 시절 ‘5·18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는 대학생 등의 요구에 대해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2003년 6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한핵 문제를 평화적으로만 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했다.
광주와 전남, 영남 등 전국을 돌며 민생 대장정을 마친 지난해 10월 9일에는 “전쟁집단인 북한을 우리는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 북한이 핵실험 계획을 전면 철회하지 않는 한 어떠한 경제협력도 할 수 없음을 결의하자”는 발언도 했다. 올해 3월 1일에는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목적이고 역할이다”고 강조했지만 불과 18일 뒤 ‘한나라당은 군정 잔당, 독재 잔재’라고 비난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삶의 분기점이 될만한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결단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정치인들도 국민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은 소신을 바꾸거나 원칙을 지키지 않은 정치인들을 냉엄하게 심판해왔다. 철새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을 달리 해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후보들은 지금 혹독한 당내 검증과정을 거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사활을 건 검증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거 행적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공방이 격화되면서 고공비행을 하던 이 전 시장의 지지율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반면 범여권 주자들은 ‘노무현 프레임’에 갇혀 지리멸렬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지율 10%대를 넘는 주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이 범여권의 한계다. 대통합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난무하는 예비후보들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선택과 과거 행적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책임의식이 없으면 국민이 나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비전과 정책이 실종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

/ 이상갑 〈변호사〉